[깊이읽기 BOOK] DJ도 바웬사도 의뢰했다, 세계 선거판 장악한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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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알파독
 제임스 하딩 지음
이순희 옮김, 부키
351쪽, 1만6000원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DJ)은 눈물의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튿날 DJ에게 미국의 유명한 정치컨설팅업체 소여 밀러 그룹에서 의미심장한 메모 한 장이 날아들었다. “패배 인정은 전략적으로도 온당하다. 이로 인해 닫혀버린 문도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225쪽 요약) 이 책에 따르면, 소여 밀러 그룹과 DJ는 86년 계약을 했는데, 그건 정계은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 복귀 타이밍을 언제로 잡을 것인지, ‘평화의 사도’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언제 이름을 올리고, 어떻게 국제 로비를 할까도 세세히 조언했다. 97년 DJ의 대통령 당선은 그런 노력의 열매인데, 책에 따르면 소여 밀러 그룹에 자문을 먼저 의뢰했던 것은 DJ 진영이다. 필리핀의 피플 파워로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 그룹이 정치컨설팅의 총아로 등장했던 시점이었다.

소여 밀러 그룹은 달라이라마, 레흐 바웬사, DJ 등 5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치인에게 자문을 제공했고, 숱한 권력자를 생산해낸 주인공이었다. 60년대 후반 출범한 소여 밀러 그룹은 미래의 선거가 TV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선거, 이미지 선거라는 걸 간파했다. 이념·소속정당보다 인물이 훨씬 중요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네거티브 전략도 일단 무기다.

고전적 민주정치를 대신하는 ‘이미지 정치’의 핵심을 파악했던 소여 밀러 그룹은 이후 잇단 지구촌 선거에서 자기주장을 입증해보이며, 짭짤한 매출을 올렸다. 알파독(alpha-dog)이란 신출귀몰한 정치컨설팅 업체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썰매개 무리에서 방향을 잡고 선두에서 이끄는 대장 개라는 뜻이다. 물론 이 책은 이미지 선거를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키아벨리적 선거판’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보너스 하나 -. 야비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잘 먹혀들까 먹히지 않을까?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삼 관심이 가는 대목인데, 『알파독』의 입장은 “먹혀든다”쪽이다. 단 그게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 엄청난 역풍을 각오해야 한단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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