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협동조합 4곳중 1곳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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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치권이 감싸고 정부가 눈치보며 미적거리는 바람에 신용협동조합의 부실이 심각해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초 신협의 정상화를 위한 법 개정안을 만들어 재정경제부에 보냈지만 진전이 없다.

금감원의 '신협 경영 정상화 방안'은 단위 신협의 예금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대신 물어주되 조합원이 출자한 돈은 물어주지 않도록 법을 바꾸는 게 골자다. 또 단위 신협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신협중앙회의 주식투자 한도를 5%로 묶고, 두명의 상근 전문 경영인을 두자는 것이다.

금감원은 은행으로 치면 주식이나 다름없는 출자금까지 국민 세금으로 물어주도록 한 현행법 때문에 신협의 도덕적 해이가 심해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은행이 문을 닫을 경우는 정부가 예금만 물어준다.

또 신협중앙회가 전문 경영인도 없는 상태에서 주식에 너무 많이 투자해 부실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협중앙회는 1995년 이후 6년 연속 적자를 내 6월 말 누적 결손금이 5천3백여억원에 이른다. 손실을 만회하려고 지난해 단위 신협에서 높은 금리로 자금을 끌어 주식에 투자했다가 증시 침체로 더 어려워졌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달 초 신협중앙회가 제출한 경영 정상화 계획을 승인했지만,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보고서는 "신협중앙회가 금융기관이 아니어서 정부가 강제로 제재할 수단이 없으며, 임원들이 비상근 명예직이라 나중에 책임을 못지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단위 신협 네곳 중 한곳꼴인 3백여개를 부실이 큰 요주의 대상으로 꼽았다. 물론 단위 신협 가운데 건실한 곳이 더 많으며, 문제가 생긴 곳은 정부가 예금주 1인당 5천만원까지 대신 물어준다.

금감위 위원인 박상용 연세대 교수는 "정부와 정치권이 의지를 갖고 이번 법 개정안을 관철해야 신협 부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는 법 개정이 어렵고, 내년도 가봐야 안다"며 "일부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 신협을 옹호하는데다 선거도 있어 국회에 개정안을 올렸다가 오히려 개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현곤.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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