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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미술관' 세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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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건평 500평 규모로 지어질 권진규 미술관 조감도.

"허영과 종교로 분신한 모델, 그 모델의 면피를 나풀나풀 벗기면서 진흙을 발라야 한다. 두툼한 입술에서 욕정을 도려내고 정화수로 뱀 같은 눈언저리를 닦아내야겠다. 모가지 길이가 몇 치쯤 아쉽다. 송곳으로 찔러 보아도 피가 솟아 나올 것 같지 않다."

조각가 권진규(1922~73)가 남긴 이 글을 보면 그는 조각이라는 종교에 몸을 바친 순결한 신도로 보인다.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 쓴 유서를 남기고 작업실에서 자살한 그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치열하게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작가로 손꼽힌다.

이렇듯 뜨겁게 타올랐던 권진규의 정신을 모아 놓은 미술관이 2007년 봄에 문을 연다.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해 경기도 여주에 서는 '권진규 미술관'이다. 작가가 죽은 뒤 30여 년 올곧게 유작을 갈무리해온 유족이 그의 대표작과 소묘 작품 등 200여 점을 기증해 미술관 설립이 가능해졌다.

동선동 작업실이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된 데 이어 이뤄진 쾌거다. 특히 흙을 주 재료로 썼던 작가의 기질을 살려 흙과 도자기의 고장인 여주에 미술관이 들어서는 점이 돋보인다.

"돌도 썩고 청동도 썩으나 고대의 부장품이었던 테라코타(진흙)는 잘 썩지 않는다"라 말했던 작가의 영혼이 영원히 썩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게 된 셈이다. 02-720-102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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