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칼럼] 부활한 상상력,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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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신화'처럼 영광과 오욕을 함께 지닌 말도 없을 것이다.

'창업신화'라고 하면 성공하기까지의 놀랄 만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분명 좋은 뜻이지만 '그건 신화야!'라고 하면 믿을 수 없는, 날조된 이야기라는 뉘앙스를 면할 수 없다. 신화에 대한 이러한 양면적 인식은 신화의 운명에서 비롯된다.

아득한 옛날 원시 인류가 자연의 품속에서 살았을 때 신화는 그들이 따뜻한 감성으로 세계를 이해했던 방식을 이야기에 담은 것으로 실제 생활 원리이자 철학이었다.

그런데 인류가 점차 자연과 멀어지고 이성적.합리적으로 세계를 파악하게 되면서 신화는 과학과 분리되어 허무맹랑하고 미신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인 우리는 겉으로는 신화를 황당한 것으로 볼 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신화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비얼레인의 『살아있는 신화』(세종서적, 2000)는 제목 그대로 신화의 살아있음을 세계 각지 많은 종족의 신화에 대한 해석을 통해 입증하려 한 책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신화가 인간의 실존에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제공하는가? 하는 물음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하여 저자는 세계의 많은 신화들을 아버지와 아들, 남녀간의 사랑, 자연과 인간 본성, 영웅, 건국 등의 주제에 따라 분류하고 이들 주제에 속한 각각의 신화들의 의미를 탐색한다.

탐색의 결론은, 신화야말로 자신의 얼굴만이 아닌 인류의 모든 얼굴을 비춰 볼 수 있는 '영원한 거울'이라는 것이다.

비얼레인의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신화를 어렵지 않게 예를 들어 그 의미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재미있게 신화학에 입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단점은 '살아있는 신화'를 얘기하면서 정작 현대 문명과 신화와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신화는 최근 크게 부활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마르크스는 과학이 발달하면 신화가 사라진다고 했는데, 첨단과학의 이 시대에 신화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증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정신적으로는 그간의 지나치게 체계적.합리적인 사고가 빚어온 정신상의 황폐, 메마름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신화에 대한 관심이 촉발된 것이다. 마치 우리가 길을 잃으면 출발했던 원점으로 되돌아 가듯이.

물질적으로는 그간 우리가 이룩한 첨단의 기술문명이 신화적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용이한 여건을 조성했다는 사실이다. 영화.애니메이션.컴퓨터 공간에서는 모든 상상이 그대로 가시화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들 영상문화는 이미지를 통해 모든 것을 표현하는데, 신화야말로 모든 이미지의 원천이다. 따라서 신화적 상상력은 오늘날의 첨단 디지털 문화를 꽃피우는 소중한 자원이 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취지, 신화를 통해 문화를 분석하고,이해해 보고 싶다는 목적을 가진 이라면 프랑스 상상력 학파의 거장 질베르 뒤랑이 쓴 『신화비평과 신화분석』(살림,1998)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비얼레인의 신화 책처럼 평이하진 않다.'심층사회학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신화를 통해 사회를 보는 심층적인 안목을 제시하고자 하느니 만큼 만만한 내용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신화의 내재 의미를 현대 물리학, 생물학적 관점에서 검토해 오늘날 신화 흥기의 당위성을 논증하기도 하고, 상상력의 흥망성쇠를 통해 인류문화사를 조망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나온 '신화의 귀환'이니 '의미의 물줄기'니 하는 말들은 이제 신화.상상력 연구 분야에서 숙어가 되었다.

그런데 이 신화의 귀환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과거에 여러 사조들이 부침(浮沈)을 거듭해 왔듯이 신화의 열기 또한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까?

하긴 이 현상을 20세기 거대 담론들이 이룩한 문명에 대한 반발 쯤으로 인식하고 머잖아 더 큰 단위의 이성과 합리성이 다시 도래해 현재의 난국(?)을 평정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우리의 인식구조가 결코 단선적이지 않고 신화와 과학, 감성과 이성이 중층적으로 공존하는 체계로 이뤄져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일일 것이다.

결국 신화란 우리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큰 방식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우리가 보는 세계의 두 모습 중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사실은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고.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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