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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침수지역 오명 씻은 서울 광진구 주민들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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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침수가 무서워 이사 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홍수 걱정 안 한다.”

서울 자양동의 펌프장 명예관리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익중(59)씨의 말이다. 자양동을 비롯해 구의동·중곡동 등 저지대가 많아 서울의 상습 침수 지역으로 꼽혔던 광진구가 3년째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지역)로 선정됐다. 소방방재청이 최근 전국 232개 시·군·구를 상대로 수해나 화재 등의 재난에 대비한 안전도 평가에서 최상위등급인 1등급을 받은 것이다. 특히 서울에서 3년 연속 안전도 1등급을 받은 곳은 광진구가 유일하다.

광진구가 상습 침수 지역이란 오명을 벗기까지는 김씨처럼 스스로 나선 주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광진구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펌프장 명예관리자나 빗물받이 책임자 등 침수 예방을 위한 봉사단 활동이 활발하다. 광진구에 침수 예방 봉사단이 구성된 것은 2001년께부터다. 그해 7월 내린 집중호우로 자양시장을 비롯해 자양동·구의동·중곡동 일대의 9500여 가구가 침수됐다. 김씨는 “자양시장에서 주민들이 한밤중에 펌프로 물을 퍼내면서 ‘정말 지긋지긋하다. 침수 피해 없는 동네를 한 번 만들어보자’고 결의했다”고 말했다. 침수가 반복될 당시 광진구에는 여름이 되면 이사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전세나 매매 계약이 끊길 정도였다.

주민들은 가장 먼저 저지대 주택 침수를 막기 위해 곳곳에 모래를 담은 마대주머니를 비치했다. 마대주머니를 쌓기 위해 가게 주인들은 한쪽 귀퉁이를 내놓았고 집주인들은 대문 한편을 양보했다고 한다. 광진구에는 현재도 4만 개의 마대주머니가 곳곳에 비치돼 있다. 또 지하주택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비상용 소형 양수기를 구입했다. 침수예방 봉사단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현재 주민 57명이 빗물펌프장의 명예관리자로 활동 중이다. 또 도로 주변의 빗물받이를 구간별로 맡아 관리하는 주민도 234명이나 있다. 수문과 지하주택 양수기 관리자도 따로 있다. 빗물펌프장 명예관리자로 활동 중인 오연길(61)씨는 “명예 관리자가 따로 있긴 하지만 주민 모두가 침수 예방 전문가”라며 “비가 많은 여름철은 물론 평소에도 주민들이 조를 짜 시설물과 장비를 점검하고 이상이 있으면 즉시 구청에 통보한다”고 말했다. 구청도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침수 예방에 1800억원 이상을 집중 투자했다. 중랑천과 한강에 수문 16개를 만들고, 아차산과 뻥튀기골 등 5곳에는 빗물 펌프장을 설치했다.

이 같은 민관 노력 덕에 광진구에서는 2004년 이후 침수피해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집중호우로 강남·서초구 등 서울시내 14개 구에서 357가구가 침수됐지만 광진구에선 단 한 가구도 침수되지 않았다. 침수지역으로 악명 높던 2000년 초반까지 정체됐던 가구수도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약 1만 가구 증가했다. 곽범구 광진구 치수방재과장은 “주민들이 적극 나선 결과 침수지역이란 오명을 벗고 최고 안전한 지역이 됐다”며 “지금도 지하주택 주민들은 이사 갈 때 펌프를 꼭 다음 세대주에게 건네준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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