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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칸 영화제 개막작‘로빈 후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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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글래디에이터’에 이어 ‘로빈 후드’에서도 강한 남성미를 보여준 러셀 크로. [UPI 제공]

리들리 스콧 감독과 러셀 크로가 ‘글래디에이터’ 이후 10년 만에 재회한 ‘로빈 후드’. 미리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영화는 로빈 후드가 평민 ‘로빈 롱스트라이드’에서 어떻게 날고 기는 숲 속의 의적이 됐는가를 그린 일종의 프리퀄이다. 배트맨으로 따지면 ‘배트맨 비긴즈’, 스타 트렉으로 따지면 ‘스타 트렉: 더 비기닝’인 셈이다. 이를 모르면 ‘언제 의적이 돼 백성들을 도와주나’ 같은, 번지수 안 맞는 의문에 빠질 수 있다.

‘로빈 후드 이전’으로 가겠다는 감독의 선택은 꽤나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 유명한 의적 얘기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1991년작을 비롯해 TV와 영화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3세기 영국, 사자왕 리처드가 전사하고 뒤이어 왕위에 오른 존 왕은 탐욕스럽기 이를 데 없다. 백성들은 고통에 신음한다. 활 쏘기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실력을 갖춘 용병 출신 로빈의 피가 끓는다. 마침 기회가 찾아온다. 리처드왕의 왕관을 운반하다 죽은 노팅엄 영주의 아들 록슬리 대신 록슬리 행세를 하게 된 것. 로빈은 록슬리의 아내 마리온(케이트 블란쳇)과 함께 지방 귀족들을 이끌고 프랑스를 등에 업은 반역자 고프리(마크 스트롱)와 최후의 전투를 벌인다.

리들리 스콧은 이야기와 액션이 따로 노는, 액션 블록버스터가 종종 빠지기 쉬운 함정을 피해간다. ‘LA 컨피덴셜’의 작가 브라이언 헬겔랜드가 쓴 각본도 탄탄하다. 로빈의 과거를 들려주기 위해 영화는 석공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자유를 외치다 희생됐다는 설정을 집어넣는다. 어린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은 로빈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트라우마를 해소해주는 이가 록슬리의 아버지 월터(막스 폰 시도우)다. 그는 로빈의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로빈에게 일깨워주며 존 왕의 폭정에 맞서게 만든다. 로빈의 캐릭터가 새롭다거나 강한 컬러를 지니는 건 아니지만, 자유를 부르짖는 남자의 이야기는 대규모 스펙터클과 어우러지기에 별 무리가 없다. 고프리의 목을 화살 하나로 꿰뚫는 러셀 크로의 남성미도 물씬 느껴진다.

올해 73세인 리들리 스콧 감독은 무릎 수술 여파로 ‘로빈 후드’가 개막작으로 상영된 칸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프랑스 왕이 쫓기듯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서 끝나는 이 영화가 프랑스의 대표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하지만 연출력에서는 자양강장제라도 잔뜩 먹은 모양새다. 영화 초반과 끝 부분 장대비가 쏟아지듯 하늘을 뒤덮는 화살 장면이 장관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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