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정규직 과보호 줄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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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은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보호를 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우리 정부에 권고했다. 또 국민연금을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쓰는 것은 계층 간 이해 조절로 쉽지 않을 것이라며 추경예산 편성을 통한 경기 진작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IMF 연례협의단이 내년 경제운용 방향과 관련해 최근 한국 정부에 권고한 내용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전달받아 '2004년 IMF 연례협의단 정책 권고'란 문건으로 요약.정리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IMF 협의단은 비정규직의 급여.근무환경을 정규직 수준으로 개선하려는 것은 잘못된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협의단은 "스페인이 1990년대에 이 방안을 시도했지만 실업만 늘어났다"면서 "한국은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정규.비정규직 간 임금.근무조건의 동등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법 과정에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협의단은 또 "이중적인 노동시장을 통합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지나친 보호를 축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통한 비정규직 보호를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정면으로 반박 논리를 편 셈이다. 협의단은 "국민연금을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 "그러나 적절한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선 투자가 상업베이스로 추진돼야 하며 재정 투명성도 확보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다양한 집단 간 이해 조절 문제로 실제 집행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릴 수 있다"면서 "예년처럼 추경예산 편성을 통해 경기 진작을 도모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신용불량자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신용불량자의 9%만이 해결되는 등 속도가 매우 느리며▶부채부담이 적고 소득이 안정적인 채무자들을 주대상으로 해 대다수의 신용불량자는 제외되고 있고▶370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의 부채 규모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인회생제도의 보완과 관련, 홍콩에서 98년부터 활용되고 있는 개인자율 조정안(IVA)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채권.채무자가 각자 자신이 만든 채무조정안을 중재자에게 제출하면 중재자가 적절한 계획을 만들어 법원에 낼 경우 법원이 인가하는 방식이다. 재경부는 현재 이 방안도 연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단은 또 개인신용정보의 통합 운영을 촉구했다. 문건은 "일부 대형 은행과 신용카드사들은 각자 신용평가기관(CB)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금융기관들은 개인신용정보를 모든 CB에 동일한 가격으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MF 협의단은 이어 "한국 경제가 점차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낙관했다. 그러면서도 "외환위기 이후 호황을 누리다가 2003년 상반기엔 정체되고, 하반기에 다시 살아나다가 지난 상반기에 성장세가 다시 약화되는 스톱-고(stop-go)식의 불규칙한 성장패턴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협의단은 또 통화 정책을 통한 경기 진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문건은 "거시경제 조절 임무는 주로 통화정책에 부여돼야 한다"면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권고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콜금리를 내린 것은 이 권고가 있은 직후다. 협의단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선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면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 IMF의 정책권고=IMF는 매년 한국 정부와 향후 경제정책방향을 토론한다. 올해도 조수아 펠만 IMF 한국 담당 과장 등 6명의 대표단이 지난 10월 13~26일 방한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한국은행 등 국내 주요 기관을 방문했다. 이들은 방한 결과를 토대로 '정책 권고'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 한국 정부에 전달한다. 본지가 입수한 것은 이 문건이다. 최종 보고서는 내년 1월께 나온다.

김영욱.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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