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북측이 자세를 바꿔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금강산에서 진행된 제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13일 결렬됨에 따라 남북관계의 냉각기가 불가피해졌다. 북측이 우리의 비상경계 조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제7차 장관급 회담과 남북 경협추진위원회의 개최 장소를 끝까지 금강산으로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북측은 14일 방송을 통해 장관급 회담의 결렬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면서 남측이 '6.15 공동선언의 근본정신을 버리고 대결을 추구'한다고 비판했다. 북측이 이래서는 안된다. 북측은 이번 회담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남북대화에 임하는 자세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 대표단이 회담에서 '반(反)테러' 비상경계 조치가 북측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누누이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9.11테러 직후 서울에서 제5차 장관급 회담을 연 선례가 있지 않았는가. 북측이 우리의 비상경계 조치를 정말 우려한다면 장관급 회담에 이어 곧바로 국방장관 회담을 열고 이 문제를 논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측은 문제를 풀어보려는 성의를 별반 보이지 않았다. 만의 하나라도 일부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대남 협상가들이 군부의 불만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면 그야말로 국방장관 회담을 열어 군사당국자들끼리 마주앉아 군사적 긴장완화를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측이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남측의 비상경계 조치나 전투력 증강에 진실로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 쌍방 합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남북간에는 늘 돌출적인 현안이 등장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지 일방적인 떼쓰기나 일수불퇴의 버티기를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남북대화의 창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을 줄곧 강조해왔다. 또 우리측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대북 경제지원에 나서야 하며 엄격한 상호주의에 집착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유연한 입장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남북대화를 지켜보면서 북측이 일방적.폐쇄회로적 억지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진정한 관계개선이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남북협상에서 서로의 입장차이 때문에 회담이 결렬될 수도,냉각기를 거칠 수도 있는 만큼 이번 회담 결과에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비록 합의 도출에 실패했지만 우리 대표단이 원칙을 고수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대중 정부의 대북협상팀이 북측의 일방적인 자세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번에도 양보를 거듭했더라면 대북 포용정책의 근본마저 흔들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측은 이런 식의 일방적 회담자세를 계속한다면 남측의 대북 여론이 거듭 악화될 것이고 대북 화해 협력론자들의 입지마저 좁아진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측이 쌍방 호혜적인 자세로 거듭날 때 남북대화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고 남북경협과 평화공존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북측의 자세 전환을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