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1세대' 수능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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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7일 오전 10시10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경기여고의 한 시험장. 대학수학능력시험 1교시 언어영역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제대로 푼 문제가 없다"는 고3 수험생들의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덕성여고 시험장에서는 5,6명의 고3 수험생이 이날 오후 시험이 끝난 뒤 가족들을 보자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쉬웠다 어려웠다 하는 문제 때문에 항상 난이도 논란을 빚어온 수능이지만 올해는 현 정권 들어 가장 어려운 것으로 평가되는데다 그동안 학력 저하 논란의 대상이 돼온 소위 '이해찬(李海瓚)1세대'들이 치른 시험이어서 또 다른 난이도 논란을 빚고 있다.

이들은 중3 때 교육부에서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간다''무시험 대학 전형으로 바뀐다'고 해 지난 3년 동안 과거보다 느슨한 분위기에서 공부해 왔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 당황한 '이해찬 1세대'=안희수 수능 출제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세칭 '이해찬 1세대'의 학력 저하 현상을 감안하지 않고 문제를 냈다"며 "그러나 난이도는 재작년보다 쉬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생소하고 까다로운 문제를 접한 고3생들의 체감 난이도는 크게 차이가 났다.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아 이날 1교시 시험을 치른 뒤 4교시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시험을 포기하고 고사장을 떠난 수험생이 지난해보다 세배나 많은 2천5백여명이나 됐다.

현대고 박성준(44)교사는 "갑자기 어려워진 문제에 학생들이 크게 당황한 것 같다"며 "고3 학생들은 재수생에 비해 4~5점 정도 손해를 볼 것 같아 진학 지도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부 교사들은 "교육부가 그동안 학생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 시험은 어렵게 내느냐"며 흥분했다.

지금의 고3생들은 1998년 이해찬 교육부 장관 시절 고교 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마련된 대입 제도와 각종 규제 때문에 고2 때는 한번만 모의고사를 치렀다. 고3 때는 아예 한차례도 모의고사를 칠 기회가 없었다.입시를 위한 보충수업도 일제히 금지돼 다양한 유형의 문제에 접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 항의=시험이 끝난 뒤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에서는 수험생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져 한때 접속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 고3생은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뜩이나 공부도 안시켜놓고 이렇게 어렵게 출제하면 재수생이나 대학에 붙으란 말입니까"라고 항의했고, 또 다른 고3생은 "수리영역 1 시험을 보고 한명이 시험지를 찢고 나가버렸다.

점심을 먹는 학생들이 채 반도 안됐다"고 말했다. 어떤 고3생은 "우리는 어른들의 시험 대상이었다"며 교육정책을 꼬집었다.

일선 교사들도 "대학의 선발권을 감안해 수능 문제가 어느 정도 변별력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올해의 경우는 대다수의 고3 학생들에게는 쇼크나 다름없다"며 "교육정책의 기본 골격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능 관리가 필요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박현영.강병철.남궁욱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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