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 품에 안기는 북한경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1983년 6월 초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당시엔 노동당 비서)이 당 전원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오진용, 『김일성시대의 중소와 남북한』)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했던 개혁·개방을 김정일은 한마디로 깎아내렸다. 중국을 찾은 김정일에게 덩샤오핑은 직접 개혁·개방의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 식이었던 것이다. 김정일의 이런 발언을 전해들은 덩은 측근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로 인해 중국의 운명이 위협받는 사태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98년 공식 집권 이후 네 차례의 중국 방문을 통해 개혁·개방 현장을 구석구석 둘러봤다. 2006년 1월 방중 때는 9일간의 일정 중 5일을 할애했다. 광둥성 광저우(廣州) 등 개방 1번지인 중국 남부의 경제특구까지 방문했다. 그러나 “천지가 개벽했다” “중국의 발전상에 충격을 받아 밤잠을 설쳤다”는 등 감탄사는 던졌지만, 끝내 실질적인 개혁·개방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치로 개혁·개방의 흉내만 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중국식 개혁·개방은 종심이 짧은 북한 현실에 맞지 않을뿐더러 체제유지에도 장애’라는 인식이 오래전부터 김정일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게 자존심이 넘치던 김정일 위원장의 태도가 이번 중국 방문에선 확연히 달라졌다.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 “우리에게 투자해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실무회담에서나 나올 법한 말을 정상회담에서 거론한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급하고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또 후 주석이 제의한 ‘양국 간 경제무역 심화’를 군소리 없이 수용했다. 경제력 차이가 엄청난 양국관계에서 말이 ‘심화’이지 실은 ‘지원’인 것이다. 결국 ‘북한경제의 장래를 중국의 지도에 맡기겠다’는 의미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쓴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북의 언론매체는 정상회담 내용 중 원 총리의 발언이나, 5개 항의 협력사안은 쏙 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중국의 고압적 태도에 반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정상회담의 의제나 합의내용은 양국의 실무선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정상의 결심을 얻어 사전에 정해지는 법이다. 이번에도 그런 절차를 밟았을 게 틀림없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오래전에 결정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 북·중 합의내용은 북한체제의 미래에 대한 김 위원장의 결심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8월부터 남측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보여왔다. 남북 정상회담 제의를 하면서 경제지원을 요구했다. 미국에 대해선 평화협정 논의를 통해 안보를 확보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미의 원칙론에 부딪혀 유야무야되자 “이제는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김 위원장이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런 내용들이 주민들에게는 의아심을 줄 수 있으므로 북한 언론매체가 이를 일단 삭제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귀국한 지 며칠도 안 돼 ‘북한이 함북의 유명탄광의 운영권을 중국 기업에 넘겼다’는 보도가 대북 인터넷 매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양국 간 경제협력을 심화한다’는 정상회담 합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내 종합시장에 있는 상품의 80~90%가 중국산”이라고 할 정도로 북한경제의 대중 의존도는 이미 상당히 높다. 여기에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차단된 채 북·중 간 경제 협력이 가속화된다면 ‘북한경제의 중국 예속’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남북 통일을 감안할 때 우리가 방치만 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미래를 통찰하는 혜안을 갖고 대북·대중국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하면 그리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도 않다.

안희창 수석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