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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독재 시대가 그립다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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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독재와 민주주의가 착종(錯綜)하는 역사는 정치체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태도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불타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독재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에 젖은 사람도 적지 않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민주화 이후 한동안 일반인 10명 가운데 8∼9명은 독재보다 민주주의를 낫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민주주의 선호는 10명당 7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기적으로 실시되는 ‘세계가치관조사’의 결과를 예로 보자. 한국에서 ‘의회와 선거에 개의치 않는 지도자가 나라를 이끄는 것이 좋다’는 견해에 대한 찬성 비율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30%에 약간 미치지 못했다. 2005년과 올해 조사에서는 그보다 20%가량 높아졌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역대 대통령 평가에 관한 여러 조사에서는 거의 언제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두로 확인되었다. 이는 물론 박 대통령의 경제적 치적 때문이다.

과거와 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 일반인들의 대다수는 여전히 물질적 안녕을 우선적 가치로 삼고 있다. 민주화 이후 점차 대통령은 국가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국회는 정쟁으로 요란하지만 민생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나” 하는 반응이 일게 되었다. 대의정치 절차는 때로 무시했지만 경제발전에 성공한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가 강해졌다.

과연 민주체제보다 독재에서의 지도자와 정부가 일반인들의 물질적 생활을 보다 용이하게 개선할 가능성이 더 큰가?

독재자가 이익집단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워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저축과 투자를 유인해 경제를 효율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리더십을 발휘했고 경제 관료들 역시 그 같은 정책 역량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독재국가에서는 권력자가 부와 이윤을 사유화하고, 독점 및 특혜 추구 기업과 유착해 민생이 도탄에 빠진 경우가 오히려 더 흔하다. 한국은 만연했던 부패와 정경유착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발전했다.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 이외에도 밤낮없이 일했던 여공, 산업근로자, 수출전선 역군들의 공헌을 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독재국가는 1인당 소득이 매우 낮거나 낮은 편이다. 몇몇 산유국이나 싱가포르 정도가 그 예외다. 그런데 민주주의 발전 수준으로 상위 30개 국가는 거의 모두 고소득을 누린다. 보건·의료 혜택을 포함해 물질적 복지를 살펴보면 독재보다 민주주의 정부가 일반인들을 더 잘살게 해준다.

정치적 소통의 길이 막히고, 사회적 쟁점에 대한 토론이 불가능하며, 지도자에 대해 책임을 묻지 못하는 독재에서 정부가 민생을 제대로 챙길 리 없다. 북한 주민들이 겪는 굶주림은 무엇보다도 그 체제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정신적 측면에서 삶의 질을 가늠하면,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단연 우월하다. 싱가포르가 부존자원 없이 동남아 경제의 중심이 된 것은 대단하지만 그 정치체제로서는 개인이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하는 문화를 발전시키기 어렵다. 과거 소련이나 중동유럽과 현재 북한의 공산독재, 중남미의 군부독재, 중동의 신정(神政)독재 등 극단적 예를 들지 않더라도 한국의 유신체제나 신군부 독재 시기에 사생활 통제,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 정보기관의 감시,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과 탄압 등 악폐가 적지 않았다. 독재의 강압 때문에 일반인들은 일시적으로 순응했지만 5·18항쟁에서와 같이 죽음을 무릅쓴 저항을 일으켰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되었다. 지역갈등과 이념갈등도 독재로 인해 유발되고 고질화되었다.

이제 개발독재 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다. 민주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정치리더십을 어떻게 발현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박찬욱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