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뮤지션 대거 진입 … 예술장르로 부상한 게임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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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온라인 게임 ‘아이온’(오른쪽)의 배경 음악을 작곡한 재일동포 뮤지션 양방언. [엔씨소프트 제공]

인기 온라인 게임 ‘아이온’에는 웅장한 클래식 콘서트가 숨겨져 있다. 게임에 몰두한 유저들은 쉬 알아채기 어렵겠지만, 기품 있는 클래식 선율이 함께 흐른다. 다큐멘터리 음악 ‘차마고도’로 유명한 재일교포 작곡가 양방언씨가 전투가 펼쳐지는 게임 스토리에 맞춰 쓴 곡들이다.

‘전사의 날개(The Wings of Knight)’ ‘격전(Solid State Battle)’ ‘불타는 대지(Magma & Beast)’ 등이 게임 유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변주된다. 3년에 걸쳐 10억원을 들여 제작한 이 게임 음악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참여해 연주했다. 아이온의 음악만을 모아 발매된 OST 앨범은 각종 음반 판매 순위에서 1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온라인 게임 ‘드래고니카’(오른쪽)의 배경 음악을 작곡한 기타리스트 이병우. [엔씨소프트 제공·중앙포토]

게임 음악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단순한 효과음에 머물렀던 게임 사운드가 게임 스토리·배경 등에 맞물린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한 편의 영화에 OST가 뒤따르는 게 마땅한 절차이듯, 게임에서도 음악이 핵심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실제로 최근 개발되는 게임들은 영화 제작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인 게임 유저가 미션을 수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사운드 전담팀이 각각의 게임 장면에 어울릴만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게임 개발·공급 업체인 엔씨소프트의 경우 음악 전담 팀만 3개에 이른다. 30여명의 전담 인력이 작곡과 연주 등을 소화하는데, 영화 음악 전공자나 밴드 출신 등 전문 뮤지션이 대거 포함돼 있다. 게임 하나에 평균 800~900곡 정도가 새로 작곡돼 깔린다고 한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유저가 맞닥뜨리게 되는 전투·정찰·휴식 등 다양한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형식이다.

온라인 게임 ‘프리스톤테일2’(오른쪽)의 주제곡 ‘체인지 더 월드’를 부른 가수 손담비. [와이디온라인 제공·중앙포토]

게임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유명 뮤지션들이 게임 음악에 참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이동준 음악 감독은 최근 온라인게임 ‘배터리’의 음악을 총괄했다. 영화 ‘올드보이’ ‘실미도’등의 음악을 총괄했던 최승현 음악감독도 온라인게임 ‘SP1’의 배경 음악을 총지휘했다. 영화 ‘왕의 남자’OST에 참여했던 기타리스트 이병우씨도 ‘드래고니카’란 온라인 게임으로 게임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화제를 모은 게임 OST의 경우 별도 콘서트가 기획되기도 한다. 올 2월엔 일본 게임 ‘파이널판타지’의 배경 음악만을 연주한 파이널 판타지 콘서트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전 세계적으로 85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이 게임의 주제곡 ‘아이즈 온 미(Eyes On Me)’ 음반은 일본에서 50만 장 넘게 팔리며 일본 가요순위인 오리콘 싱글차트 9위에 오르기도 했다.

엔씨소프트 변종혁 사운드 3팀장은 “최근엔 처음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게임 개발과 음악 작곡을 동시에 진행하는 추세”라며 “게임 음악도 하나의 예술 장르로 굳건히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게임 음악은…

게임당 1000곡까지
한 곡당 1분 30초 내외

게임 음악은 성격상 영화 음악과 닮은 구석이 많다. 스토리와 배경에 적절히 녹아들 수 있는 멜로디가 강조되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뚜렷한 영화와 달리 게임에선 조작 능력이나 작동 방식에 따라 개별 유저의 스토리가 각양각색으로 달라진다. 영화에 비해 게임 배경 음악의 개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통 스무 곡 내외에 그치는 영화 음악과 달리 게임의 경우 많게는 1000곡 가까이 음악이 삽입된다. 무수한 상황에 맞추어 작곡되기 때문에 록·발라드·뉴에이지·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다. 대부분 보컬이 배제된 연주곡이다. 유저가 음악을 인식하지 못한 채 게임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젖어 들게 하기 위해서다. 헤드셋을 낀 채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음악의 주파수를 정밀하게 따져 이용자의 귀를 자극할 수 있는 사운드를 걸러내는 것도 특징적이다.

음악의 길이도 짧은 편이다. 보통 한 곡당 1분 30초 내외다. 음악이 너무 길 경우 게임이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연주곡이지만 게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담아내는 주제곡을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가수 손담비가 주제곡을 부른 ‘프리스톤테일2’와 소녀시대의 티파니·서현·제시카가 주제곡을 불러 화제가 된 ‘마비노기’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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