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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 천안·아산시장 후보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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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6·2지방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다. 현 정권의 중간 평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당과 관계없이 시민들은 천안·아산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선택해야 한다. 특히 천안·아산지역은 충청권의 민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지역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다. 그러나 누가 누구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렵다.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많은 8장의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 때의 6장보다 2장(교육감, 교육의원)이 더 많다. 중앙일보 천안·아산은 독자와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기타 정당 및 무소속 순으로 천안·아산의 예비 살림꾼을 만나 공약과 철학,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글=장찬우·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복지·문화·환경 도시 천안시민과 만들고 싶다”

이규희 민주당 천안시장 예비후보가 서민과철학 비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민주당 천안시장 후보에 이규희 전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사무총장이 확정됐다. 이 예비후보는 지난달 한태선 예비후보와의 경선에서 이겨 민주당 대표 주자로 선거에 나선다. 지난 2004년 민주당 양승조 의원과의 경선에서 떨어져 이번 출마가 첫 선거인 셈이다. 8년간 시장을 지낸 성무용 한나라당 예비후보와의 대결에서도 경쟁력 높은 후보로 평가 받고 있다.

이 후보는 요즘 전철역과 새벽 시장을 나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스스로 인지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그는 천안역에서 첫 전철이 출발하는 새벽 5시에 맞춰 유권자를 만난다. 청과물시장, 태조산도 주요 활동 무대다. “전철역이나 새벽시장을 나가면서 다른 후보와도 만나지 못했다”는 그는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지만 외롭다고도 한다. 아침 회의가 끝나면 지역에서 열리는 오전 행사에 참석하고 중앙시장을 다녀가는 원도심 주민들을 만나며 오후를 보낸다. 저녁에는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대학가를 비롯해 식당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얼굴을 알리고 있다.

Q 상대후보에 비해 첫 선거라는 점이 불리하지 않나.

상대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경선이 인지도를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여기에 선거 구도도 인지도 상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독선적 국정운영, 세종시 정서, 전 시장의 3선에 대한 거부감에 따른 교체 여론 등 세 가지 변수가 분명 인지도 상승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일이 가까워 질수록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Q 자유선진당과는 어떤 차별성이 있나.

젊은 층에서는 선진당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현 정부와 한나라당 정서, 정권 심판론에 대한 대안은 젊은 층이며 바로 민주당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대안으로 선진당도 있고 민주당도 있다고 본다. 비록 지지층이 젊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단점이 분명 좋은 선거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Q 이번 선거에 나서게 이유는.

천안시가 필요로 하는 건 바로 서민을 사랑하는 철학이다. 서민적 철학을 갖고 행정을 펼쳐야 한다. 지금까지의 전시행정은 그만하고 시민들을 잘 살수 있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 큰 건물을 짓거나 겉만 화려한 보여주기만을 위한 행사로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이제는 서민경제를 살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출마한 가장 큰 이유다.

Q 천안시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성무용 전 시장은 능력이 있는 분이다. 추진력이 있고 조직을 장악하는 능력도 있다. 문제는 그 능력을 어디에 쓰는지가 중요하다. 전시행정이나 표에 도움되는 겉만 화려한 행사, 선심성 행사에 예산을 쓰느냐, 아니면 서민경제나 실질적인 시민의 삶에 보탬이 되는 곳에 쓰느냐다. 양적으로 팽창하는 개발도시에서 이젠 복지·문화·환경도시로 미래지향적 선진도시로 가야 한다. 서민적 철학과 비전을 갖고 천안시를 바꿔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 동안의 성 전 시장은 능력이 있음에도 시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부분에는 부족했다.

Q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나.

어려운 문제다. 시장은 행정경험이나 능력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행정경험 보다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갖고 누구를 위해 어떤 일을 가치 있게 실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치적이나 전시적 성과에 위주로 가치 판단이나 정책적인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서민경제와 복지·문화·환경·삶의 질에 가치를 두고 모든 사업을 결정할 것이다.

Q 여론조사를 보면 상대 후보와 차이가 있다.

여론조사에 나온 지지도 차이는 당연히 있다고 본다. 인지도가 아직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의 지지도는 적어도 50~60% 이상이 무조건 나와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을 지닌 분으로 30%대의 지지율을 받았다는 건 매우 낮다고 본다. 교체 여론이 많기 때문이다. 지지를 그만큼 못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론조사와 투표는 또 다르다. 현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정서는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불러낼 것이다. 여론조사와 당선 여부는 엄연히 다르다.

Q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

행정경험이 없다고 하는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직원이 150명이 되는 기관이다. 행정경험으로는 충분하다. 화합형, 통합지향적 리더십을 통해 천안에 존재하는 갈등을 통합해 질적으로 향상된 미래형 도시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경청하는 자세와 정책 대안을 갖고 있다.

Q 어떤 점을 부각시켜 나갈 계획인가.

두 가지다. 전시행정 이제 그만해야 된다. 또 하나는 동서불균형 발전 문제다. 신도시를 서부지역에 편중해 개발했고 그 결과 구도심이 몰락했다. 동서불균형을 바꾸는 것이 가장 큰 현안이다. 구도심에 사는 시민들은 앉아서 재산이 반 토막 났다. 이 문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이고 부각시켜야 할 부분이다.

Q 대학시절 전국민주화운동 경험이 눈길을 끈다.

가장 행복할 때였다. 대학의 민주화 운동시절 정의감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당시 국민탄압이 어려움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당당한 자부심으로 옳은 일을 한다는 자긍심으로 살았다. 농촌에서 도심으로 이사와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달동네 주민들을 위해 살던 시절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Q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성무용 전 시장도 잘하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인은 더 잘할 수 있다. 활기하고 행복한 천안으로 바꿀 수 있다. 젊고 패기 넘치고 열정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갖고 동참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인생이야기  욕심 없는 인생 … 자유와 행복을 누리다
초등학교를 두 군데 다닌 이유

학창시절 이규희(오른쪽).

아버지가 결혼을 하고 6·25때 군대에 가서 8년을 복무하셨다. 6·25가 끝나도 제대를 안 하니 할머니는 어머니가 맘에 안 들어서 그러는 줄 오해하셨다. 다행히 군에서 편지가 와 오해가 풀렸다. 나는 사병으로 8년을 복무한 아버지가 아직도 이해되지 않지만 아마도 가난한 시절 입을 하나 덜려는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는 무남독녀. 아버지는 제대하고 장인과 장모를 모셨다. 그것이 효심인지 처가살이인지는 여쭈어보지 못했다. 그곳이 내가 태어난 ‘동면 죽계리 이노골’이라는 마을이다. 아버지는 성실하게 일하면서 논과 밭을 늘려가셨다. 그 덕에 나는 학비걱정을 안 했다.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께 중풍이 왔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외가에서 친가로 이사를 했고 같은 면에서 두번이나 전학(덕성초에서 천동초로)을 하게 되었다.

고교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생

학창시절에는 왜 모자를 비뚤어 썼을까? 거기에다 가방도 끈을 잡아들지 않고 옆으로 받쳐들고 다녔다. 개성의 연출이랄까 어쨌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일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생이었다. 나쁜 짓은 물론 싸움 한번 해본 적 없고 공부도 잘했다. 개성이 중시되는 요즘 과연 교복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고 그 속에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운동권일 때가 가장 행복했다

광주의 비극은 수많은 젊은 학생들을 격분시켰다. 1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미팅을 많이 했을 텐데(딱 한번 했음) 정의감이 있어 당당했고 이상이 있어 행복했다. 구속, 제적, 공장취업이라는 운동권의 정해진 코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혼해서 같이 공장 맞벌이 부부가 되었고 저축도 가장 많이 한 시절이었다. 3~4년 공장에 다니며 도면을 보고 자동차 부속을 가공하는 선반 기술자로서의 자부심에 행복했다. 부수입으로 노조위원장의 이력을 만들었고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는, 어떤 의미에서의 훈장도 만들었다.

내 인생에서의 제일 큰 자랑

민주화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다.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혁신당과 민주당이 통합할 때 부국장 자리도 친구에게 양보했다. 자리욕심도 없고 재물욕심도 적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창조물인 문화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리고 친구와 소주와 함께하는 정감있는 대화는 나의 최고의 행복이다. 나의 자유의 철학의 끝은 화장하고 산골하고 비석도 없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누가 아산시민과 소통할 시장될지 판단해 달라”

복기왕 민주당 아산시장 예비후보는 “이제 막 출발점에 서 있는 젊은 시장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복기왕 민주당 아산시장 예비후보는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다음해 3월 선거법위반으로 20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선거판의 현실은 냉혹했다. 그는 2005년 3월17일 당시 열린우리당 선배의원들에게 고한 ‘마지막 인사’를 통해 이렇게 약속했다. “고향에 내려가 지역의 일꾼이 되겠다”고.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그는 아산시장 후보로 뛰고 있다. 국회의원 임기를 채우지 못한 빚을 갚기 위해 출마했다는 그를 만났다.

Q 요즘 하루 일과를 말해 달라.

새벽 4시쯤 기상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운이 좋으면 아침식사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때를 거르는 날도 많다. 젊음을 무기로 뛰고 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늦게 도착해 인사를 드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복기왕이 오면 다 온 거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으로 봐주시는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다.

Q 유권자를 만나면 주로 어떤 말을 하나.

젊으니까 2배로 열심히 뛰어서 힘 있고 활기찬 아산을 만들겠다는 말을 주로 한다. 정책분야에서 가장 민감한 분야가 교육 분야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무상급식 추진과 우리 아산의 교육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공감을 표시하는 분들이 많다. 어르신들에게는 건강한 노후를 책임지는 효도하는 시장이 되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Q 언제 시장 출마를 결심했나.

출마 고민을 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수도권 규제완화와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현 정부와 소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아산의 정치 모습을 보며 내 고향 아산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천안과의 통합 논란이 있을 때 우리 아산시의 대응을 보며 심한 절망감을 느꼈다. 아산의 발전을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강한 추진력을 가진 정치인 시장이 필요하다. 내 고향 아산에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만들어 내고 싶다.

Q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가장 큰 경쟁력은.

만나는 시민 분들이 이런 저런 하소연을 많이 한다. 젊은 사람이니까 다른 후보보다 편안하게 의견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시민이 시장인 시대를 만들 수 있는 후보라는 평가가 상대적인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타 후보들이 갖고 있지 못한 중앙정치 경험이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함께 활동했던 많은 국회의원들이 현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예산 배정 등 국회의원이 하는 역할까지 해낼 것이다. 중앙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지역에서는 지역주민의 의지를 모아낼 수 있는 후보라는 점이 타 후보가 갖지 못한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자부한다.

Q 어떤 점을 선거에서 부각시켜 나갈 계획인가.

교육이 살아야 아산이 산다. 아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왔고 자식들도 아산에서 교육을 시키고 있는 후보로서 아산의 교육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 학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고향 아산에서도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교육과 취업이 연계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켜 나갈 것이다. 우리 아산에도 새로운 변화,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몇 년 동안 외지 유입인구가 크게 늘었다. 이들이 아산 지역발전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젊고 깨끗한 후보라는 점을 내세워 시민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Q 국회의원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경험이 있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신 시민들에게 죄송하고 부끄럽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 어쩔 수 없다. 운동경기로 따지면 단순 파울로 판정될 사안인데 퇴장을 당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 크다. 그래서 이번 시장 선거를 더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다짐을 하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Q 어려운 상대를 꼽으라면.

모든 후보들이 다 힘든 상대라고 본다. 임좌순 한나라당 후보는 공직선거의 심판 역할을 하는 기관의 수장 출신에다 여당의 조직력을 갖고 있고 이교식 자유선진당 후보는 현역 국회의원의 지원과 지역정당의 조직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당에, 지역주의에 기대서 하는 정치행태를 단호히 배격해 왔다. 내가 의지하는 것은 시민뿐이다. 시민이 원하는 시장이 되겠다. 좋은 결과가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Q 당선되면 가장 먼저 추진할 정책은.

친환경 무상급식은 당선 즉시 추진될 수 있도록 교육청 등 관계기관들과 협조해서 시행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해묵은 과제인 시외버스터미널 문제도 민간 영역이긴 하지만 의견 수렴 및 타당성 등을 면밀히 검토해서 새로운 아산의 랜드마크로 재탄생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다.

Q 그동안 가장 보람된 일과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보람된 일은 국회의원 시절 학교급식법을 대표 발의한 것이다. 법안 내용에 학교조리사의 명칭과 처우 개선을 명문화해서 조리사들의 지위를 높였다. 국회의원 시절 사립학교법을 대표 발의했을 때 우수사립학교지원법을 함께 추진하려고 했지만 임기를 못 채우는 바람에 시도조차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Q 마지막으로 유권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민 여러분들과 소통이 잘 될 후보가 누군지, 누가 더 원칙과 소신이 있는지, 누가 아산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는지, 판단해 주길 바란다. 바르고 깨끗한 시정을 펼치는 것은 이제 시작하는 젊은 정치인으로서 철칙이자 마지노선이다.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부탁 드린다.



나의 인생이야기  최연소 국회의원이 아산시장의 꿈을 꾸다

화목한 가정 7남매중 여섯째

명지대 총학생회장 시절 복기왕.

어릴 적, 우리 집은 열 식구였다. 할머님과 부모님 그리고 위로 누님 3분과 아래로 4형제가 있다. 7남매 중 여섯째, 남자 형제 서열로는 세 번째다. 농사가 생업인 가정에서 흙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배우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웅변 잘하던 소년 사회에 눈을 뜨다.

초등학교 때부터 웅변을 곧잘 한다는 칭찬을 듣기도 하고 각종 대회에 출전해 수상을 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총학생회장을 지낸 경험은 학우 대중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내고, 갈등이 있는 곳에서는 조정자의 역할을 해가며 진정한 민주적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시대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참여했던 청년시절의 경험들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간에 정치를 하는 지금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

최연소 국회의원의 영광

노무현 대통령 아산시 선거대책위원장이란 직함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이후 사실상 민주당 아산지구당 위원장의 역할을 하며 고향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여당 내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교육 경쟁력 강화 노력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국민 통합시대를 열고 아산 지역발전의 핵심은 교육 경쟁력 강화에 있다는 신념으로 국회 교육 상임위를 지원해 들어가 아산지역에서 수능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아산 경쟁력 제고의 핵심은 중등 교육 분야의 경쟁력 향상에 있다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더 열심 뛰는 일꾼 돼 보답

나는 국회의원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고 한다. 하늘 우러러 한 점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고,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했던 나이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잘잘못을 떠나 아산 시민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커다란 영광과 사랑을 주신 아산 시민 여러분께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일까?” 수없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친구와 동문 선후배들로부터 오뚜기처럼 일어서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다시 보여 드리는 것이 과분한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는 조언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한다. 영광과 상처를 안고 아산의 미래를 함께 준비할 많은 분들과 함께 아산을 젊고 활기차고 희망이 가득 찬 도시로 만들기 위해 젊은 만큼 두 배 더 열심히 뛰는 일꾼이 되겠다는 각오를 굳게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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