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향서 영농법 지도하는 신동헌 PD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난달 31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귀여1리.고들빼기 수확이 한창인 비닐하우스에 점퍼 차림의 신동헌(申東憲 ·49)씨가 나타나자 10여명의 농민들이 일손을 멈추고 반갑게 맞이한다.

“무조건 크게만 기른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농산물도 이젠 규격화해야 경쟁력이 있어요.”

농민들을 향해 따끔하게 충고하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오히려 고마워하는 분위기다.

농업전문 프로듀서(PD)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농업경영 전도사’로 변신한 申씨.직접 농사 한번 지어본 적이 없는 申씨지만 농민들은 그를 ‘선생님’으로 모신다.

20년 넘게 TBC(동양방송) ·KBS에서 PD로 일하는 동안 많은 농업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농업경영의 베테랑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만들었던 ‘농업도 경영이다(1997∼98년)’‘일요특강 나의 영농체험(98년)’‘농어촌 지금(99∼2000년)’ 등의 프로그램은 농민들에게 교과서로 통한다.

申씨가 농업 전문 PD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97년 ‘농업도 경영이다’의 경북 문경편을 제작하면서.서울의 공장에서 오른손목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고 귀농한 한 농민이 화장실에 휴지 대신 걸린 신문지의 광고를 보고 멜론 농사에 뛰어들어 연간 수억원을 버는 대성공을 거둔 사연을 취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작목(作目) 선택을 잘하고 경영 마인드만 갖춘다면 우리 농업도 훌륭한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전국의 성공한 농민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농업기술과 선진경영방식을 배우기 시작했다.지금까지 만난 농민만도 1천여명.취재경험을 묶어 ‘신PD도 언젠가는 농촌간다(99년 ·씨네포럼)’‘이제는 농사도 따따블 벤처다(2001년 ·에디터)’ 등 두 권의 농업관련 서적도 출간했다.

지난 5월 申씨는 자신의 책 제목처럼 그동안 일해 오던 방송국을 그만두고 고향인 경기도 광주로 돌아갔다.농촌출신인 그가 취재현장에서 체득한 농업경영 노하우를 고향 농민들에게 전파하기위해서다.

광주시 퇴촌동광농협 김점환(金点煥 ·41 ·여)씨는 “申씨가 온 이후로 지역 농민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申씨의 꿈은 농민들이 좋은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유통구조를 만드는 것.

지난 8월부터 그는 광주 ·분당 등의 아파트 단지에 지역 농민들이 오이 ·호박 ·버섯 ·대파 ·무 ·토란 등을 직접 팔 수 있도록 주선하고 있다.

농가는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아 소득을 높일 수 있고 소비자도 싱싱한 농산물을 값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광주시 초월면의 오이를 아파트단지에 팔러 갔을 때는 50개 들이 40상자가 불과 두시간만에 동이 나기도 했다.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최근 전국적 규모의 농산물 전자상거래를 위한 인터넷 사이트를 제작하고 있다.

申씨는 “작목 선택이나 판로 때문에 고민하는 농민이 없어질 때까지 이 일을 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031-797-5005.

김선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