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의 갈지(之)자 대북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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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의 장소문제를 놓고 게걸음을 거듭한 정부의 자세는 너무 한심스럽다. 남쪽에서 이미 서울이 아닌 서귀포에서 열린 바 있는 장관급 회담이라면 북쪽의 금강산에선들 못 열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평양을 제의했다가 북한의 일관된 주장에 부닥치자 궁색하게 평양 또는 묘향산으로 수정했지만 결국 북측 제의의 수용이라는 원점으로 회귀했다.

이야말로 쓸데없는 소모전이자 북한의 입장만 강화해준 도로(徒勞)가 아닌가.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라든가 남북문제의 본질을 갖고 필요한 기싸움을 북측과 벌였다면 그래도 국민의 이해는 받았을 것이다.

서로 오고 가면서 주관쪽 제의로 결정해온 장관급 회담 장소를 정부가 시비삼은 것 자체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꿴 것이었다. 이렇게 무원칙하게 접근하니까 대북협상에서 늘 밀리면서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지 정부는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북측이 남쪽에서 열릴 차례인 여러 회담의 금강산 개최를 고집한 것이 정부로 하여금 그러한 입장을 결정토록 했던 한 요인인 것 같다.

그럴수록 정부가 원칙과 사리에 입각해 장관급 회담의 금강산 개최를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회담의 남쪽 개최를 촉구했어야 마땅했다. 억지논리로 이산가족 상봉을 무기한 연기해 버리는 북측에 우리마저 억지로 대응한다면 북측 입장만 높여주는 꼴이 된다.

이런 식의 대북협상으론 국민이 바라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 이산가족 상봉도 지연된다는 등의 이유로 금강산 회담을 다시 수용키로 한 정부의 설명은 너무 궁색하다. 어차피 받아들일 바엔 시비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정부는 대북협상에서 원칙과 정도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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