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재정 건전화 대책을” … 금융당국도 휴일 비상회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헤르만 반 롬푀이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왼쪽)과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브뤼셀 AFP=연합뉴스]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차원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단기적으론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강화하며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중장기적으론 나라 곳간을 더욱 튼튼히 꾸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올해 주요 20개국(G20) 회의 의장국으로서 국제 공조를 이끌어 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G20 재무차관들에게 긴급 전화회의(콘퍼런스콜)를 제안해 성사시켰다고 밝혔다. 전화회의는 10일(한국시간) 새벽 열리며, 그리스 문제가 집중 논의된다.

남유럽발 경제위기에 따른 국내외 경제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긴급회의가 9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 장병화 한국은행 부총재보, 권혁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용환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등이 참석했다. 임 차관(오른쪽 첫째)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은행 등 금융당국은 휴일인 9일 오후 3시 명동 은행회관에서 합동회의를 소집했다.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국내외 경제·금융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지난 7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비상금융합동대책반회의를 연 데 이은 정부 차원의 점검회의다.

합동회의는 지난해 11월 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 유예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열린 뒤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회의는 지난주 일정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정부 내부적으로는 하루 앞당겨진 것이다. 당초 회의는 국제통화기금(IMF) 이사회, 유럽연합(EU) 27개국 재무장관 회의 결과가 나온 뒤인 10일 오전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휴일 회의가 주초 금융시장에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 감안됐다.

이번 회의는 남유럽 재정위기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시장 안정 역할을 강조한 데 의미가 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개방경제인 우리가 세계시장의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과도하게 반응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있는 이유도 설명했다. 우선 단기외채 비중은 경제위기 당시의 44%에서 현재 37%로 낮아졌고, 외환보유액도 2788억7000만 달러로 세계 6위 수준이다. 4개 남유럽 국가에 대한 국내 금융회사의 채권금액(익스포저)도 5억 달러가 안 된다. 더욱이 국가부채는 지난해 말 350조원 수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3.8%에 머물고 있다. 이는 주요 20개국(G20) 평균 80%보다 훨씬 낮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정 건전화의 중요성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직접 강조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국무위원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장을 소집해 재정전략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는 원래 대통령 주재로 중기 재정운용계획의 밑그림을 짜는 연례회의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회의는 ‘재정 건전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대통령은 “오늘 회의는 매우 중요하다”며 “유럽 위기의 영향이 미국과 아시아에까지 미치고, 여과 없이 한국 주가가 그 영향을 받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난 2년간 경제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전례 없이 재정지출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세계에서 비교적 재정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적절한 재정지출을 해야 하지만 지금부터는 재정 건전성에도 관심을 둬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145조원대인 의무지출은 2014년에는 200조원 수준으로 불어나고, 이르면 내년부터 재량지출 규모를 추월할 전망이다. ‘의무지출’이란 지출 근거와 요건이 법령에 따른 것으로, 예산 편성권자의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경직성 지출을 말한다. 예산정책처는 “고령화사회를 맞아 늘어날 재정지출을 감안할 경우 재정 건전화를 위해 세원 확대와 균형예산편성원칙(PAYGO)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도 이날 “고령화 추세에 따라 고정지출이 늘어나는데, 비용을 절감하는 것만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수 없다”며 대책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시했다.

◆중요성 커진 G20 회의=오는 6월 부산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그리스 등 남부 유럽의 재정위기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남유럽 위기로 이번 회의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셈이다. G20은 다음 달 4, 5일 윤증현 재정부 장관 주재로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를 열고 ‘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균형된 성장’을 목표로 한 프레임워크를 논의하면서 그리스 재정위기로 촉발된 남유럽 금융위기 문제도 중점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G20 재무차관과 중앙은행 부총재들은 오는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 의장인 신제윤 재정부 차관보의 조율로 그리스 위기에 대한 경과를 점검한다. 앞서 G20 의장국인 한국을 포함해 캐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 재무장관은 지난 3일 유로 회원국과 IMF의 구제금융 지원 및 그리스의 자구노력을 환영하고 IMF의 그리스에 대한 특별지원의 신속한 이행을 지지할 것을 약속했다. 

글=허귀식·서경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