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0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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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05. 박대통령 면담 거절

성철 스님이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3천배를 시키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성철 스님 본인이 얘기한 이유를 들어보자.

"내 얼굴 볼라고 3천배 하라카는게 아이라. 절에 왔으면 부처님을 먼저 보라는 거지 나 보라고 하라는게 아이라. 내가 뭐 잘났다고. 그래서 내가 맨날 '나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가라'고 말하는 거라.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 이익이 없어.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라. 그래서 그 기회를 이용해 부처님께 절하라카는 거지."

성철 스님이 신도들에게 3천배를 본격적으로 시키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 직후 경남 통영 안정사 토굴에 머물 때 부터다. 이어 대구 파계사 부속 성전암으로 옮겼을 때는 어떻게나 사람들이 많아 찾아오는지 산으로 피해 달아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산으로 도망가면 산에까지 따라와. 한 말씀이라도 해달라고. 하도 그래가지고 내가 그랬지.'내 말 잘 들어, 중한테 속지 말아. 나는 중인데 나같은 중한테 속지 말란 말이야'라고 고래고함을 질러도 안가는 거라. 그래 할 수 없이 절 바깥으로 철망를 둘렀제. 그래서 한 10년 살았네. 남의 속도 모르고 '도도하네' 뭐네 하는데, 그게 다 '나 보러 오지말고 부처님 찾아라'는 거야."

성철 스님이 3천배를 시키면서 꼭 덧붙이는 얘기가 있다.'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이다.

"절을 그냥 하는 거는 아이라. 사람들이 복달라고, 자기 위해서 기도하는데, 그거는 거꾸로 된 거라. 남 위해 절해야제.3천배 하다보면 처음에는 억지로 남 위해 절을 하는데, 하다보면 나중에는 남을 위해 절하는 사람이 되고, 또 그라만 나중에는 남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거라."

성철 스님이 강조하는 또 하나는 '세속의 모든 것이 부처님 앞에 무의미하다'는 가르침이다. 성철 스님은 돈 많은 신도들에게 굽신거리고 가난한 신도들을 낮춰보는 일부 스님들을 자주 꾸짖기도 했다.

"중이 신도를 대하는데 사람은 안보고 돈과 지위만 본단 말야. 안 그래□ 그래서 난 이 대문에 들어올 때는 돈보따리와 계급장은 소용없으니 일주문 밖에 걸어놓고 알몸만 들어오라고 하지. 사람만 들어오라 이거야. 들어와 부처님을 뵙고 가라 이거지."

이런 원칙에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 1977년 구마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가는 길에 해인사를 들르게 됐다. 당연히 방장인 성철 스님의 영접을 요구해왔다. 해인사 주지 스님이 백련암으로 올라와 부탁을 했다.

"대통령께서 오시니까 큰스님이 큰절까지 내려와 영접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철 스님은 한동안 주지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말했다. "나는 산에 사는 중인데, 대통령 만날 일이 없다 아이가."

주지를 비롯해 맏상좌인 천제 스님까지 나서 성철 스님을 설득하려고 많은 애를 썼으나 성철 스님은 끝내 큰절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박대통령은 방장 대신 주지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사명대사가 열반한 암자인 홍제암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그 짧은 방문 중에 박대통령은 해인사에 소중한 도움을 주었다.

당시 붉은 단풍으로 뒤덮여 홍류동이라 불린 해인사 골짜기엔 오배자충 피해가 막심했다. 소나무가 말라죽는 병인데, 죽은 나무를 하루 빨리 베어내지 않으면 온산이 벌겋게 변할 지경이었다. 박대통령은 홍류동을 지나다 붉게 죽어가는 소나무를 보고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홍류동 소나무를 살려내라"고 지시했다. 덕분에 정부지원을 받아가며 한 3년간 방제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고, 올해도 홍류동은 그 명성에 맞는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성철 스님이 박대통령을 영접하지 않은 사건을 두고 산내에서도 평가가 갈렸다. 한쪽은 '성철 스님이 박대통령을 영접해 한마디만 했으면 퇴락해가던 해인사 건물들을 일신하는 큰 지원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 성철 스님이 너무 까다로워 해인사가 발전이 없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다른 한쪽은 '성철 스님이 선승들의 권위을 지켜주었다'는 찬사. 선승들의 지도자로서 세속의 최고권력을 가벼이 봄으로써 산중의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주로 선방에서 수행중이던 선승들이 절대적 지지를 보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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