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돈 빌려 달라는 딸에 “돈은 부모한테 빌리는 것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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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26면

2003년 7월 영국에 사는 16세 소녀 콜리 로저스는 190만 파운드(약 33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됐다. 로저스는 갑자기 생긴 큰돈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20만 파운드짜리 휴가를 다녀오고 가슴 확대 수술을 위해 45만 파운드를 썼다. 남자친구가 저지른 범죄를 뒷감당하기 위해 법정 비용 7만 파운드까지 대신 내줬다. 결국 돈은 6년 만에 바닥났다. 지금은 변변한 직장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고 한다.

세계 거부들의 자녀교육

로저스의 복권 당첨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게 문제가 아니었다. 2002년 3000억원에 이르는 복권에 당첨된 미국의 잭 휘태커 역시 5년 만에 빈털터리가 됐다. 세금을 제하고 1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받았지만 각종 범죄 사건에 연루돼 당첨금을 변호사비로 날렸다.

복권 당첨으로 ‘인생역전’이 가능할 듯싶지만 대부분 당첨자의 결말은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것 같은 돈을 가지게 됐지만 금세 써 버리고 만다. 부(富)를 일구는 것도 어렵지만 수성은 더 어렵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옛말도 있다. 돈에 대한 철학과 관념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 많은 돈’도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래서 부자들은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경제교육을 철저하게 시킨다.
 
돈의 가치를 알게 하라
빌 게이츠가 자녀들에게 주는 용돈은 얼마일까. 참고로 그는 올해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조사한 ‘2010년 억만장자’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재산이 530억 달러, 6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그가 아이들에게 주는 용돈은 매주 1달러다(2007년 캐나다 방송 CBC가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그렇다). 미국의 12~17세 아이들이 받는 평균 용돈(일주일 16달러60센트)에도 크게 못 미친다. 대신 집안일을 도와주면 그 일의 가치에 따라 용돈을 준다. 장난감이나 휴대전화를 사 달라고 ‘조르기’에 들어가도 좀체 넘어가는 일이 없다. 조른다고 아빠가 쉽게 사 줬다가는 자녀가 그 물건을 사는 데 들어가는 돈의 가치에 대해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록펠러 가문의 용돈교육은 유명하다. 미국의 석유재벌 존 록펠러(1839~1937년)는 역대 최고의 부자로 꼽힌다. 1935년 그의 개인 재산은 15억 달러였지만 독일 경제 일간지 한델스블라트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가치로는 3000억 달러가 넘는다. 그런데도 자녀 용돈 관리에는 엄격했다. 아들 록펠러 2세와 딸들에게 어릴 적부터 용돈 기입장을 쓰도록 했다.

이런 가풍은 록펠러 2세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자녀가 10대였던 20년대 매주 토요일 저녁, 그는 자녀의 용돈 기입장을 직접 검사했다. 허튼 데 돈을 쓰지 않았는지, 가이드라인(3분의 1은 저축, 3분의 1은 기부, 3분의 1은 개인적 용도)은 잘 따랐는지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그렇다고 쓰고 남을 만큼 돈을 넉넉히 주지도 않았다. 열 살 전후해 용돈을 주기 시작하는데 보통은 일주일에 30센트에서 시작했다. 록펠러 2세는 용돈교육을 엄격히 한 이유에 대해 “돈 때문에 아이들의 인생이 망가질까 두렵다. 나는 아이들이 돈의 가치를 알고,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존경받는 부자들의 자녀 교육법』, 방현철·장선애,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일하고 흘리는 땀은 신성하다
4년 전 워런 버핏은 자기 재산의 85%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300억 달러가 넘는 돈이다. 자녀들이 섭섭했을 만도 싶은데 기부 발표 직후 나온 뉴욕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그렇지도 않다. 모두 아버지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했다고 한다. 평소 워낙 돈에 대해 철저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일화도 있다. 어느 날 딸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하자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돈은 은행에 가서 빌리는 것이지 부모한테 빌리는 것이 아니다. 축구팀에서 아버지가 유명한 센터 포드였다고 그 자리를 아들이 물려받을 수 없지 않으냐.”(『데메테르의 지혜로운 선택』, 정갑영, 삼성경제연구소). 그는 부모가 부자라고 자기가 부자인 것은 아니며 돈은 일해 벌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 폴 게티(1892~1976년)는 유전 개발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명소의 게티빌라와 게티센터를 그가 세웠다. 게티는 사업 성공의 이유로 부모』님의 가르침을 꼽았다. 그는 자서전 『내가 본 것들(As I See It)』에서 “부모님에게 노동 윤리(work ethic)를 배웠다. 부모님은 아들이 ‘돈은 버는 것(Money is something to be earned)’이라는 걸 배우기를 원했다”고 밝혔다(『부자들의 자녀 교육)ㄴ, 방현철, 이콘). 게티의 집은 넉넉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일해서 용돈을 벌게 했다. 그가 열두 살 때 쓴 일기에는 “우체국에 가서 편지 부치는 심부름을 하고 10센트를 받았다” “아버지의 책을 청소하고 35센트를 받았다” 등의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아버지 석유회사에 들어가 하루 12시간 꼬박 일하고 3달러를 받았다. 사장 아들이라고 봐주는 게 없었다.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돈을 받고 똑같은 숙소에서 생활했다.
 
절약은 힘이 세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모토는 ‘항상 최저 가격을 약속합니다(Every day low price)’이다. 월마트의 기업문화에는 절약정신이 녹아 있다. 이는 창업자 샘 월턴(1918~92년)의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85년 포브스가 발표한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전혀 부자 티를 내지 않았다. 79년식 픽업 트럭을 죽기 직전까지 손수 몰고 다녔다. 옷도 평범하게 입고 머리도 동네 이발소에서 깎았다. 월턴은 30년대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대공황 시기를 보낸 부모에게서 절약정신을 배웠다. 자녀들에게도 절약정신을 강조해 장남 롭이 92년 월마트 회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도 사무실 크기를 줄이는 것이었다. 현재 그의 사무실은 10㎡에도 못 미친다.

9대 진사 12대 만석으로 알려진 경주 최부자 집은 한국의 대표 ‘명문가’다. 명문가를 이룬 비결은 교육이다. 특히 6개 조로 이뤄진 가훈 가운데 ‘며느리들은 시집 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는 구절은 근검절약이 만사의 기본이라는 철학을 보여 준다. 이런 교육을 받은 이들이 가정 경제권을 쥐니 300년 부가 이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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