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해프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의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가 3악장으로 된 피아노 독주곡 '4분33초'를 '작곡(?)'한 것은 1952년이었다.

그해 8월 미 우드스톡 음악제에서 젊은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에 의해 초연됐다. 정확하게 4분33초의 연주시간 동안 튜더는 각 악장의 시작과 끝에 맞춰 피아노 뚜껑을 닫고 열었을 뿐 건반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침묵의 소리'도 음악이라는 케이지의 역발상에 허를 찔린 청중들은 야유를 퍼부었지만 현대 음악사가들은 '4분33초'를 해프닝의 선구적 실험사례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의 행위예술가 앨런 캐프로가 59년 10월 뉴욕 루벤화랑에서 '6개 부문으로 된 18가지 해프닝'이란 전시회를 열면서 해프닝은 일회성과 우연성을 강조하는 현대예술의 한 경향을 가리키는 용어로 굳어졌다.

해프닝(happening)은 본래 발생이란 뜻이다. 웹스터 영어사전은 그 외에도 감각적이거나 감성적인 자극을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우발적 사건으로 해프닝을 정의하고 있다. 우스꽝스럽거나 어처구니없는 뜻밖의 사건이 해프닝이다.

태산을 울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쥐 한마리였다는 '태산명동서일필(太山鳴動鼠一匹)'이 해프닝의 전형이다.

지난 주말 한때 국민을 아연 긴장케 했던 뉴욕발 백색가루 소동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소식이다. 국립보건원이 문제의 백색가루를 정밀분석한 결과 탄저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부패방지용 가루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경찰과 의료진이 긴급출동해 뉴욕발 우편물이 개봉된 사무실에 있던 16명의 직원을 격리해 밤새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등 난리법석을 피웠으니 결과적으로는 머쓱한 꼴이 됐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당사자나 관계당국으로서야 과민 반응을 보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실체가 확인도 되기 전에 용감무쌍하게 이를 1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한 한 신문이야말로 이번 해프닝의 금메달감이라고 해야겠다. 판단의 문제인지 계산의 문제인지 그 속내가 오묘하다.

신군부 정권 시절 '평화의 댐' 소동이 그랬듯이 역사의 프리즘으로 돌이켜 보면 해프닝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적지 않다.

미국을 휩쓸고 있는 탄저균 테러공포의 배후가 내국인일지 모른다는 의혹이 미국에서 점점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예술로서 해프닝이 그렇듯이 해프닝의 시작은 대개 센세이션이다. 탄저균 테러공포 역시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고 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배명복 국제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