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무용가 · 평론가 '결탁' 깰 때 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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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최근 어느 평론가는 지방의 한 행사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쓴 책을 팔아달라고 요구하고, 또 그 행사에 참석해 평을 써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 전화를 받은 무용가가 대접을 할 수 없으니 꼭 오실 필요는 없다고 대답하자, 그 평론가는 '숙식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교통비나 두둑하게 달라'고 말을 했다. …또 어느 평론가는 '당신 정도면 자서전 한 권 정도 있을 법한 무용가이니 나한테 돈을 주고 자서전을 쓰라'고 권유한다."

월간 무용전문지 '춤과 사람들'의 이번달 호에 실린 '무용계 이슈'라는 칼럼의 일부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일부 무용 평론가들의 부도덕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무용가가 각광을 받고 크느냐 아니면 소외 속에서 죽느냐 하는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들의 횡포가 눈에 선하다.

그러나 이 글 속에는 함정이 있다. 글 자체만 보면 평론가는 '나쁜 나라'이고 무용가는 그들의 피해자처럼 그려져 있지만 일부 무용가들 자신이 지금껏 그런 부도덕성을 키운 '공범'이라는 사실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무용가들과 평론가들이 결탁해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은 무용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밀월관계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무용계는 물론 문화계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징조다. 위에 인용한 한 무용가의 고발이 좋은 사례다.

또 하나의 극적인 예가 최근 돌출했다. 지난해 어느 소장 평론가의 평론에 대해 명예훼손 청구소송을 냈던 무용가(모 대학 교수)가 서울지법에서 패소 판결을 받은 것. 법원이 평론의 독자성을 인정해 준 의미있는 결과다. 하지만 정작 기성의 무용평론가 그룹에서는 이에 대한 논평은 아직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결탁의 카르텔'과 유관한 때문일까,

오히려 한국음악평론가협회가 "이번 판결이 예술가들의 비평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양심 있는 평론가들이여, 이제 금기의 카르텔을 부숴라.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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