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직 전문기자 칼럼] 도로교통법 108조 폐지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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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고하면 죄인이 되고, 안하면 괜찮고-.

인명피해가 따르지 않은 단순 물피(物被)교통사고는 '2년 이하의 금고나 5백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을 받는 범죄다(도로교통법 제108조). 그러나 처벌은 '신고를 해야' 받는다.

지난해 경찰이 처벌한 물피사고는 21만2천건, 보험회사 보상건수(91만 6천건)의 23.1%다. 무려 70만여건의 범죄가 그냥 묻힌 셈이다. 또 보험회사에도 신고 안된 암수(暗數)범죄 는 그보다 많으리라는 게 업계 추산이다.

처벌도 종이호랑이(범칙금 통고서)다. 합의 또는 종합보험 등에 가입한 경우 피해액이 2백만원이 안되면 경찰은 입건해 조서만 꾸민다. 2백만원이 넘을 경우 검찰에 넘기지만 그래봐야 검찰도 '공소권이 없어' 처벌을 못한다(교통사고처리특례법).

이런 사고에 경찰은 조사(목격자 조사, 현장.증거물 촬영,가해자.피해자 조사)에 6~12시간을 소비한다.사고 당사자는 (혹시 나중에 죄를 뒤집어쓰지 않을까 걱정돼) 경찰을 부르고 올 때까지 현장을 보존하느라 길을 막는다. 몇시간씩 조사받아야 한다는 불편을 알고 나중에 합의해 신고를 철회하려는 시민과 (112에 신고된 건수라)처리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경찰과의 마찰도 다반사다.

이 조항을 악용하는 계층도 있다. 외제차나 고급차, 새 차는 경미한 사고라도 피해액이 2백만원이 넘기 때문에 무조건 경찰을 불러 형사사건화하려 한다. 피해자가 합의금을 더 받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감정싸움 끝에 "벌점이라도 먹이자"며 경찰을 부르기도 한다.

최근 경찰 스스로 "단순물피 교통사고를 비범죄화하자"는 공청회를 개최했다. 모두 대찬성일 것 같았는데 검찰측 토론자가 "종합보험 등에 가입했다 해도 범죄는 범죄"라며 "그대로 두자"는 주장을 펴 의외였다.

형법조차 타인 재물을 과실로 손괴한 경우 피해규모에 상관없이 범죄로 보지 않는데, 왜 유독 운전자만 (보험 등으로 피해보상 장치를 사전에 해놓은 경우에도) 범죄자가 돼야 하는가. 외국도 대부분 단순 물피사고는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말이 나온 김에 '도로교통법 제108조'를 폐지하면 어떨까.

음성직 교통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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