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누더기' 장기주식저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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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런 작품을 내놓으려고 그렇게 요란을 떨었나요. 한마디로 투자자를 우습게 보는 상품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 주부터 선보이는 장기주식저축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여야가 밀고 당기는 사이 이런저런 투자 제한이 누더기처럼 더해져 상품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투자손실 만큼 세금을 돌려주는 방안이 야당의 반대로 철회된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저축액의 70% 이상을 주식에 묻어야 하고, 주식 매매를 한해에 네번꼴(매매회전율 4백%)로 제한하는 이상한 단서가 붙었다. 정부.여당은 뭐든 주가를 띄우는 데 도움이 될만한 작품을 서둘러 내놓으려 들었고, 야당은 '장기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명분에서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시의 가격제한폭은 상하 15%이고, 하루에 10% 이상 주가가 오르내리는 종목이 수두룩하다. 매매회전율은 연 1천2백%를 넘어 한달에 한번꼴로 주식의 주인이 바뀐다.

이런 현실에서 5.5%의 세액공제 혜택을 보려고 주식매매 제한을 감수할 투자자가 얼마나 될까.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매매횟수 제한에 걸리면 주가가 떨어질 게 뻔한 상황에서도 그냥 눈 뜨고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 때 사고 팔 기회를 놓치면 손실이 날 수 있고, 손실이 크면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도 의미가 없다.

언제부턴가 정부.여당은 주가지수를 '통치지수'처럼 여겨왔다. 주가가 떨어지면 표도 줄어드는 것으로 생각해 호들갑을 떨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권 말기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투자자들도 정부에 노골적으로 주가부양책을 요구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한 증시 전문가는 "테러사태 이후 많이 걱정했지만 주가하락을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고객예탁금이 1조원 이상 새로 들어왔고 주가도 회복됐다"며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의 주가부양책"이라고 강조했다.

보름 전에도 정부는 '주식 모으기 운동 펀드'를 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인기가 없어 1백16억원어치 팔린 상황에서 사실상 판매가 중단됐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진기한 증권상품은 장기주식저축이 마지막이길 기대한다.

김광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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