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후진타오가 개발한 톈진 방문 … 나선항 모델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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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5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오후 3시40분쯤(현지시간) 김 위 원장과 수행원 등을 태운 의전차량 수십 대가 베이징 도심 창안제(長安街)를 지나가고 있다. 중국 측은 오후 3시부터 댜오위타이(釣魚臺)로 가는 길을 전면 통제하고 무장 경찰을 배치했다. [베이징=연합뉴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5일 베이징(北京)에 앞서 6년 만에 톈진(天津)을 다시 방문했다. 그는 세 번째로 중국을 찾았던 2004년 4월에도 이곳에 왔었다. 당시 톈진은 개발 초기여서 허허벌판에 잡초가 무성한 곳도 많았다. 그러나 6년이 흐른 현재 이곳은 중장기 전략에 따라 크게 변화했다. 특히 경제특구인 빈하이신구(濱海新區)는 김 위원장이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탈바꿈했다. 김 위원장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톈진 빈하이신구를 다시 찾은 이유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의욕적으로 개발 중인 나선항의 발전 방향에 참고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앞서 바다를 낀 다롄(大連)을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4일 오후 7시 다롄역을 출발한 김 위원장은 베이징으로 직행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톈진을 깜짝 방문했다. 앞서 김 위원장의 방중 선발대 역할을 했던 김영일 노동당 국제부장도 지난 2월 다롄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이날 오전 8시20분(한국시간 오전 9시20분) 톈진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비교적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역무원은 “김 위원장이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동쪽 광장을 통해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타고 역을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톈진경제기술개발구(TEDA)와 보세항, 항만시설을 방문했으며 장가오리(張高麗) 톈진 당 서기가 직접 안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톈진 방문과 관련, 중국 당국은 또다시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이날 오전 7시부터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톈진, 톈진~베이징 간 고속도로가 폐쇄됐다. 이 때문에 톈진 시내 금융가에서도 심한 교통 통제가 이뤄졌다. 톈진 한인회 황찬식 회장은 “출근 시간에 고속도로가 폐쇄되는 바람에 톈진 빈하이신구에 입주한 100개 한국 기업 소속 교민들이 출근을 못 하는 불편을 겪었다”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45분쯤 베이징 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창안(長安)대로의 동쪽에 나타나 서쪽에 있는 숙소인 댜오위타이 국빈관으로 내달렸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톈진에서 자신의 전용열차를 베이징에 먼저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뒤 자신은 승용차를 타고 톈진 일대를 추가로 시찰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이날 김 위원장은 톈진에서 베이징으로 이동하면서 고속철을 탔을 거란 관측도 제기됐다. 톈진에서 베이징까지 승용차로는 아무리 빨라도 1시간30분이 걸리나 시속 300㎞가 가능한 고속철을 타면 30분 만에 주파가 가능하다. 만약 김 위원장이 오후 3시에 고속철을 탔다면 오후 3시30분쯤 베이징 근교에 도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2004년에는 베이징~톈진 간에 고속철이 건설되기 전이어서 이번에 중국 정부가 고속철 시승을 권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대북 민간 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은 김 위원장이 이번에 중국을 방문하면서 과거와 달리 동선 노출을 꺼리지 않은 것은 북한 내에 후계 체제가 이미 확립됐다는 점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5일 전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일은 ‘내가 노출돼 혹시 암살되더라도 북한 정권은 후계 체제가 이미 확립돼 끄떡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며칠 남은 방중 기간 중 좀 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톈진=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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