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 책동네] '개똥이 그림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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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자연친화적인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 보리가 10년 전 '보리 기획'시절에 웅진출판사를 통해 만들었던 '올챙이 그림책'시리즈를 새롭게 단장, '개똥이 그림책'이란 이름으로 내놓았다.

60권짜리 전집으로만 판매해오던 것을 요즘 생활과 많이 다른 부분을 빼고 50권으로 줄이면서, 무엇보다 낱권으로도 골라 사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유아 교육에 필요한 모든 것, 즉 감성 발달, 바른 습관 형성, 가치관 형성, 인지 발달, 통찰력 형성, 자연 관찰의 여섯가지 주제로 크게 나눠져 있지만, 각 권마다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가지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 시리즈를 기획했던 윤구병(변산 공동체 교장, 전 충북대 철학 교수)씨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자연.생명 철학이 일관되게 담겨있는 것이다.

어린이 책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생명을 존중하고, 세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웃과 더불어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게 살 길을 일러주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이 책 제목도 '귀한 아이일수록 막 키우라'던 옛 어른들의 말을 되새기면서 아이들을 온실에 가두지 말고 몸도 마음도 건강한 '개똥이'로 키우라는 의미로 붙인 것이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오랜 세월 동안 어린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것은 한 권 한 권의 내용이나 그림이 우리 정서에 딱 맞으면서 재미나기 때문일 게다.

예를 들어 '감성 발달'편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깨비를 소재로 한 책이 네 권인데, 저마다 전혀 다른 모양.성격의 도깨비들이 등장한다.

1편의 경우 할머니댁에 심부름을 가던 송이가 빨강 도깨비.파랑 도깨비.노랑 도깨비 등을 만나는 이야기 속에 색의 기본 개념이나 색깔이 섞이는 원리 등은 물론, 파랗던 고추가 익어 빨갛게 변하는 자연 현상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강아지똥』의 삽화를 그린 정승각씨 등 역량있는 화가 20명이 신인 시절에 작업한 수채화.유화.콜라주.인형.판화 등도 각 권마다 새로운 미적 체험을 선사해 준다.

첨단문명 속의 도시 아이들 생활도 소재로 삼아 내용을 보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책'인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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