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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판치는 버스중앙차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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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4일 오후 서울 논현역 사거리에서 신사역 사거리 사이의 버스중앙차로를 오토바이들이 질주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4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지하철 3호선 신사역 사거리. 한남대교에서 강남역으로 가는 왕복 10차로 도로가 꼬리를 문 차량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도로 가운데의 버스중앙차로만 여유가 있다. 이때 검은 오토바이 5~6대가 “두두두~” 굉음을 내며 중앙차로를 질주한다. ‘퀵 서비스’ 오토바이다. 일반차로에 있던 오토바이 2대도 갑자기 중앙차로로 끼어들었다. 뒤따라오던 안양행 3030번 좌석버스가 급정거를 했다. 오토바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중앙차로를 따라 강남역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운전기사 박덕현(43)씨는 “중앙차로에 갑자기 끼어드는 오토바이 때문에 급정거를 하고 보면 오토바이는 이미 도망가고 없다”며 “오토바이로 중앙차로가 무법천지가 됐는 데도 아무도 단속을 안 한다”고 말했다.

오토바이들이 서울시내 12곳에 설치된 버스중앙차로를 헤집고 다니고 있다. 일반차로가 막히면 오토바이들은 어김없이 중앙차로를 달린다. 이날 기자가 지켜본,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신사역 사거리~뱅뱅사거리 강남대로(5.9㎞)의 버스중앙차로는 ‘오토바이 중앙차로’와 다름없었다.

버스중앙차로에서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3월 3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이화여대 후문 방향으로 달리던 601번 시내버스가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오토바이가 중앙차로에 갑자기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버스가 급정거했으나 승객들은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601번 버스 운영회사인 ㈜다모아자동차의 문정호 상무는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손님들이 다쳐 우리가 고스란히 배상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 “퀵 배달이 많은 명절 일주일 전부터는 기사들에게 방어운전 교육을 할 정도로 오토바이가 골칫거리”라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런 데도 버스중앙차로의 관리·단속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는 속수무책이다. 버스중앙차로를 불법으로 달리다 적발되면 승용차는 5만원, 오토바이는 4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지난해 오토바이 단속 건수는 329건에 불과하다. 김형규 서울시 교통지도담당관은 “오토바이가 1차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니 단속자가 사고를 당할 우려도 있고, 인력도 부족해 단속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현재 폐쇄회로(CC)TV 단속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내의 버스중앙차로(92㎞)에 설치된 CCTV는 네 대뿐이다. CCTV는 정면에서만 촬영하기 때문에 번호판이 뒤쪽에 달려 있는 오토바이를 단속하는 게 쉽지 않다.

서울시는 이달부터 3개 노선 12대의 버스 내부에 CCTV를 설치해 전용차로 불법 주행 단속을 강화했다. 버스의 앞과 옆을 찍는 카메라 2대가 중앙차로를 달리는 차량을 잡아낸다. 16대의 버스에 추가로 설치할 비용을 포함해 모두 10억원의 예산을 들였다.

그러나 오토바이 단속에는 무용지물이다. 오토바이 번호판이 승용차보다 작고 움직임이 빨라 카메라가 번호판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규 교통지도담당관은 “오토바이 번호판도 읽을 수 있는 CCTV를 개발하고, 단속 인력을 보강하도록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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