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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내 맘대로 베스트 7 홍상수 감독 영화엔 꼭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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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영화 ‘하하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하하하’까지 10편의 장편영화를 만든 홍상수 감독. 그의 영화엔 느슨하면서도 매력적이며 묘한 법칙이 있다. 맹목적으로 준수되는 도그마는 아니지만, 영화의 씨줄과 날줄을 이루는 홍 감독의 법칙들을 간추려 보았다.

7 제목은 시공간에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밤과 낮’ 그리고 여름에서 온 제목 ‘하하하(夏夏夏)’가 시간의 범주에 속한다면, ‘강원도의 힘’ ‘극장전’ ‘해변의 여인’ 그리고 단편 ‘첩첩산중’은 공간의 제목. 그의 영화는 뚝 잘라낸 시간대 속의 어느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6 여행을 떠난다

그의 인물들은 항상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그곳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그 여정을 기억한다. 그것은 한 공간에 대한 두 사람의 엇갈린 경험이며(‘강원도의 힘’‘하하하’) 한 남자의 두 공간에 대한 추억이기도 하다(‘생활의 발견’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관객은 어느새 그 여행의 동행자가 된다.

5 여관과 모텔의 추억

여행을 하다 보면 하룻밤 묵을 곳이 필요한 법. 여기서 감독은 왠지 누추하고 허름한 여관과 모텔을 종종 선택한다. 그 공간의 정서적 스펙트럼은 꽤 넓어서, 비루한 감정부터 유치한 로맨스까지 모두 담아내며, 코믹한 상황과 명대사의 산실이 되기도 한다.

4영화인과 예술인

영화감독(혹은 지망생)ㆍ배우ㆍ영화평론가ㆍ영화제 프로그래머 같은 영화계 사람들을 비롯해 소설가ㆍ시인ㆍ화가 같은 예술인들이 가세한다. 홍상수의 캐릭터는 상당수 감독의 일상과 주변에서 온다. 하지만 그가 그들을 그대로 영화에 옮긴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 그들은 영감을 주는 존재이긴 하지만, 감독은 철저한 거리두기를 통해 캐릭터를 창조한다.

3술 취한 사람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술(특히 낮술) 장면을 뺀다면? 이미 그의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특히 남성 캐릭터들이 특유의 ‘찌질함’을 드러낼 때는 얼근히 취해 있는 주사의 순간. ‘하하하’에서 문경(김상경)이 엄마(윤여정)에게 ‘맴매’ 맞는 장면은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가끔은 배우들의 취중 연기가 리얼함을 더한다.

2반복과 차이

같은 상황은 두 명 이상의 인물에 의해 다르게 드러나고, 그 반복과 차이는 홍상수 영화의 독특한 결을 만든다. 중요한 건 관점이며 입장이고, 이야기의 방식이며 스타일이다. 무언가 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배반당하고, 관객들 앞엔 어느새 열린 결말이 도착한다.

1모든 것은 그날 아침에 창조된다

‘생활의 발견’부터 그는 촬영 당일 아침에 그날 찍을 분량을 담은 시나리오를 들고 현장으로 나갔다. 이것은 “미리 다 알고 있는 걸 찍고 싶지 않은 욕구”이며, 촬영하는 기간에 발견한 것이 영화에 반영되는 과정이기도. 그는 매일 밑그림을 바꾸며 작품을 완성해 가는 화가인 셈이다.

영화 칼럼니스트 mycutebir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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