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 빠지는' 증시 허수주문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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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모르면 손해보는 투자기법이다."(데이트레이더 金모씨)

"선의의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시장교란 행위다."(증권거래소 관계자)

17일 서울지법이 실제로 주식을 거래할 의사가 없으면서 매매 주문을 낸 주부 4명에게 벌금형을 선고하자 허수(虛數)주문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허수 주문이란 주식을 산 뒤 추격 매수를 유도하기 위해 싼 가격에 사자 주문을 냈다가 취소하는 것. 허수 주문으로 주가가 뛰면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긴다.

지난달엔 허수 주문을 내는 방식으로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득을 챙긴 개인투자자 등 10명이 쇠고랑을 찼다.

또 지난 2월에는 같은 수법으로 1년만에 2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A증권사 직원 J모씨가 구속됐다. J씨는 거래소.코스닥의 우량주에 허위주문을 내 매수잔량을 쌓아놓은 뒤 주가가 오르면 팔아치웠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엔 데이트레이더들이 체결되지도 않는 하한가.상한가에 매수.매도 주문을 넣지 않고 실제 거래액의 한.두 단계 아래.위 가격에 과감하게 주문을 쌓아두는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원하지 않는 가격에 매매가 이뤄질 수도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라는 것이다.

8년 경력의 주식투자자이자 소설가인 이도영(44.여)씨는 "매수.매도 잔량이 급격히 늘거나거나 주는 것을 보면 작전세력의 움직임이 보인다"며 "이를 역이용하는 방법으로 매매를 한다"고 자신의 투자기법을 소개했다.

정부는 허수주문을 막기 위해 내년부터 주식거래 호가 공개 범위를 현재의 5단계에서 10단계로 확대하고 총호가 수량은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증권거래소도 지난 5월부터 허수주문이 많은 지점들에 주의를 주는 사전경고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허수주문 단속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증권거래법(제188조)에는 '타인의 매매를 유도할 목적으로 주문을 내는 행위에 대해 처벌이 가능하다'고 돼있다. 하지만 자의적인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수량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시장의 투명성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증권연구원 정운모 수석연구원은 "허수주문이 다른 투자자의 판단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지만 섣부른 규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고의성.상습성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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