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검사 윤리강령 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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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검사는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피해자 등과의 사적(私的)인 접촉을 삼가고(중략),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한다."

1999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검사 윤리강령'의 한 대목이다.

당시 법무부는 "새 정부의 국정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자발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직무관련 정보의 부당한 이용 금지 및 이해관계가 있는 사건의 회피(回避)의무 등을 골자로 한 윤리강령을 제정했다.

하지만 C사 주식분쟁사건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김진태(金鎭泰)전 동부지청 형사4부장과 진정인 간의 부적절한 대화내용은 윤리강령의 존재이유를 무색케하고 있다.

사건 진정인과 수차례 만나 그동안의 수사 진행상황을 설명하고,검찰 간부들의 개입의혹을 살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검찰 중간간부로서의 자질을 의심케하는 것은 물론 최소한의 윤리마저 저버린 행위인 것이다. 더욱이 "정치권에서 끝까지 노(NO)하면 검사장이 못된다"는 대목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확보라는 행동준칙이 사치스런 수사(修辭)에 불과했다는 점을 스스로 보여준 꼴이 됐다.

金부장검사 발언 녹취록 공개 후 대검은 대부분의 간부들이 "어떻게 이 따위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하는 등 격앙된 분위기다.

일선 검사들 또한 이용호(李容湖)씨 사건과 관련해 세명의 검찰간부가 옷을 벗은 지 불과 5일 만에 또 다시 부장검사가 부적절한 처신이 문제 돼 검찰을 떠나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그러나 金부장검사 발언 녹취록 파장을 돌출사태 쯤으로 여기고 봉합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金부장검사의 발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 어려운 현상과 관행이 검찰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격이 검증되지 않은 검사'들이 출신지 덕에 요직에 임명된 사례 등 검사 윤리강령을 무색케 하는 일이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金전부장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또 다시 개혁안을 내놓은 검찰은 총장에서 평검사까지 한 지방 부장검사가 던진 이 말을 새겨보아야 한다.

박재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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