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테러 용의자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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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수에 그친 지난 주말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폭탄테러 용의자가 체포됐다. 신원은 코네티컷주에 사는 30세의 파키스탄계 미국인 파이잘 샤자드로 밝혀졌다. 에릭 홀더 법무부장관은 3일(현지시간) 심야에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두바이행 비행기를 타려던 용의자를 검거했다고 4일 발표했다. 용의자는 최근 파키스탄을 다녀왔다고 뉴욕 타임스(NYT)·CNN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수사 당국은 범행에 사용된 1993년식 닛산 패스파인더 차량을 3주 전 현금으로 사들인 인물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 끝에 샤자드를 체포했다.

그는 코네티컷주에 사는 여성이 인터넷 사이트 두 곳에 중고차를 판다는 광고를 올리자 동네 쇼핑몰에서 차 주인을 만나 현금 1800달러를 주고 차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샤자드의 신원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나 두 사람 간 통화 기록 추적을 통해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최소한 한 명 이상의 공모자가 더 있다고 보고 그를 쫓고 있다.

미국 정부엔 비상이 걸렸다. 백악관은 이번 사건을 “명백한 테러 공격”으로 규정했다. 수사도 국제 테러조직을 감시해 온 법무부 소속 ‘합동 대테러 태스크포스(JTTF)’로 이관했다. 미국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는 용의자가 파키스탄 출신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최근 5개월 동안이나 파키스탄을 여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탄테러 불발 직후 테러조직 ‘파키스탄 탈레반 운동(TTP)’은 이번 사건의 배후를 자처하고 나섰다. TTP는 “이번 테러 기도가 지난달 18일 이라크 정부군의 공격으로 숨진 알카에다 지도자 아부 아유브 알마스리(일명 아부 함자 알무하지르)와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의 순교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TTP 최고지도자 바이툴라 마흐수드는 지난해 12월 아프간 내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 기지 테러 배후로도 지목된 위험 인물이다.

아직은 이번 사건에 해외 테러조직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폭발물 전문가 짐 캐버노프는 “미수에 그친 차량 폭탄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가 만들었다고 하기엔 너무 조악하다”며 “이는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어 일을 망치는 ‘루베 골드버그 기계장치’”라고 비유했다. 용의자가 전문 테러조직으로부터 폭탄 제조법을 훈련받았을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용의자도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며 파키스탄 과격 단체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해외 테러조직 감시망에도 아직 특이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파키스탄 산악지대에 은신하고 있는 무장세력이 미국 본토를 겨냥해 테러를 꾸밀 능력이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뉴욕을 비롯한 미국 사회는 다시 테러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비록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뉴욕 한복판에서 언제든 다수의 인명을 앗아 갈 수 있는 테러가 발생할 수 있음이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NYT는 이날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인파로 붐비는 시장이나 공공건물을 공격하는 사건은 더 이상 이라크·스리랑카·콜롬비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고 경고했다.

용의자 검거로 당국의 수사는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샤자드 주변과 그가 파키스탄 여행 도중 만난 사람에 대한 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수사 당국은 다만 전날 관광객의 비디오카메라와 폐쇄회로TV에 찍혔던 두 명의 남자는 이번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인물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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