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5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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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과연 경은 어떠한가.이름만큼 활을 잘 쏘는가."

"어느 정도는 쏠 줄 알고 있나이다."

허리를 굽혀 조아리면서 장보고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짐은 그대의 활솜씨를 한번 보고 싶구나. 이 자리에서 한번 보여줄 수 없겠는가."

이 무렵 신라에서는 활쏘기가 대유행하고 있었다. 실제로 흥덕대왕의 할아버지 원성왕 때에는 궁술로서 인재를 선발하기도 했던 것이었다.

원성왕은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정하여 문무를 구별하였으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오직 활쏘기로만 인물을 발탁하였던 것이었다.

수서(隋書)에 이르기를 '신라에서는 매년 8월 15일에 잔치를 베풀고 관인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마(馬)와 포(布)를 상으로 준다'하였는데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8월 한가위에는 왕의 주재 아래 궁술대회를 개최하여 여러 신하들이 모인 가운데 친목을 도모하는 활쏘기를 하였고, 이것이 궁중풍습이 되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궁술대회를 통해 활을 잘 쏘는 선사자(善射者)를 발탁하여 적소에 배치함으로써 투철한 무예정신을 길러나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흥덕대왕은 존례문(尊禮門)앞에 활터를 만들고 왕이 친히 임어(臨御)하여 군사들의 활솜씨를 관람하는 것을 즐겨 하였던 것이었다. 대왕은 즉시 신하들에게 각궁(角弓)을 가져오도록 명령하였다.

각궁은 맥궁(貊弓)이라고 불리던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활로 가장 강한 활 중의 하나였다.

마침 조원전 앞 뜨락에는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그 꽃나무가지 위에서 새 한 마리가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화살로 매화나무 위에서 앉아 울고 있는 새를 쏘아 떨어뜨릴 수 있겠느냐."

상대등 김충공이 장보고에게 활을 건네주면서 말하였다. 장보고는 대답 대신 활을 들어 시위에 밀피로 꿀벌의 밀을 발랐다. 그렇게 하면 활의 시위가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져서 착력이 훨씬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장보고가 있는 자리에서 매화나무까지는 대충 어림잡아 백보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장보고는 천천히 엄지손가락 아랫마디에 뿔로 만든 각지(角指)를 끼었다. 그리고 천천히 화살을 절피에 밀어 넣었다.

활을 들어 거궁하여 매화나무 위에 앉아 울고 있는 새 한 마리를 향해 겨냥하였다.자신을 쏘아 죽이려는 살의를 전혀 눈치 못 챈 듯 새 한 마리는 여전히 재잘거리면서 울고 있었고 숨막히는 정적이 어전을 감돌고 있었다.

핑. 어느 순간 장보고의 손에서 화살이 날아갔다. 화살은 새가 앉아있던 지점을 정확히 꿰뚫었다. 동시에 무엇인가 툭하고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장보고가 쏜 화살이 그 새를 명중시켜 새가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것은 새가 아니라 새가 앉아있던 매화나무의 가지였다. 그 순간 놀란 새는 잠시 정신을 잃은 듯 땅 위에 곤두박질 치며 떨어졌다가 곧 황급히 날개짓을 하며 사라져버렸다.

장보고의 화살은 빗나간 셈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빗나갔다고는 말할 수 없음이었다. 왜냐 하면 화살을 쏘아 새를 맞춰서 떨어뜨리지는 못하였다지만 어쨌든 순간적으로 새를 떨어뜨리는 데에는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황공하나이다, 대왕마마."

장보고가 활을 거두면서 말하였다.

"신의 활솜씨가 신통하지 못하여 새를 맞춰 떨어뜨리지 못하였나이다."

이에 흥덕대왕이 큰소리로 껄껄 웃으면서 말하였다.

"아니다. 경이야말로 신궁이다.옛 중국에는 감승(甘蠅)이란 활의 성인이 있었느니라. 제자가 궁도(弓道)에 대해 묻자 감승은 이렇게 대답했느니라.

'나는 새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궂이 화살을 쏠 필요는 없다.그대가 진심으로 궁도를 이루었다면 화살을 쏘지 않고서도 나는 새를 떨어뜨려야한다.'

경이 화살을 쏘아 새를 맞추지는 못하였으나 새를 떨어뜨려 날아가게 한 것은 결국 활궁(活弓)이 아니겠느냐. 새를 떨어뜨리면 되지,굳이 화살을 쏘아서 새를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흥덕대왕은 장보고가 새를 명중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새가 앉았던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서 새를 죽이지 않고서도 떨어뜨렸음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었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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