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도로 유실수 열매도 시민 재산인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1980년대에 어떤 가수는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몇년 전부터 지방자치단체들은 가로수로 사과.감.은행나무 등을 많이 심었다. 그 덕분에 요즘 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그런데 도로의 유실수들에 열매가 맺어 익어가면서 가로수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도로변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가는 것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서리를 하고 있고, 나쁘게 말하면 절도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몰래 조금씩 따가는 것은 그냥 애교로 봐 넘길 수 있겠지만 차를 세워놓고 공공연히 털어가는 볼썽 사나운 광경도 자주 눈에 띈다. 이같은 서리는 가을이면 으레 발생하는 연례행사가 됐다.

가로수는 공유물이다. 유실수 열매의 주인은 우리 모두이다. 삭막한 현실에서 빨갛고 노란 가로수의 열매는 풍성한 가을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시민의 재산이다. 그런 열매를 몰래 따가야 되겠는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고 즐기려는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다.

서리꾼들이 활개친다면 당국은 공공근로 인력을 배치, 유실수를 지켜야 한다. 또 많이 따가다 적발되는 사람에게는 그 벌칙으로 유실수를 지키도록 하면 될 것 같다. 이 같은 소문이 퍼지면 유실수 열매의 서리는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도로의 사과.감나무 등에서 기른 열매는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 걷어들여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사회복지시설에 나누어 주면 좋겠다.

민병하.경기 장호원고등학교 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