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영화 '무사' 수출 위해 또 가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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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영화 '무사'가 수난이다. 또 가위질을 당하게 됐다. 폭력.섹스의 문제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시장논리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장을 탓할 순 없다. 어차피 보이려고, 그리고 팔려고 만든 게 영화 아닌가.

'무사'의 상영시간은 2시간 38분. 감독의 1차 편집분이 4시간에 가까워 처음부터 얘기가 됐다. 너무 줄이는 바람에 감독의 생각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뛰어난 사실적 액션에도, 드라마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런데 이번엔 30분이 더 줄어들 전망이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외국 바이어들이 현재 분량도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해왔다. 수입하기에 너무 길다는 것. 결국 영화사는 '무사'의 후반작업을 진행했던 호주에 가서 30분을 더 들어냈고, 일단 음악만 듣기에 흉하지 않은 수준에서 가다듬었다. 2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국제 필름마켓에서 수정본을 선보인다.

사실 '무사'(김성수 감독)는 하반기 최대 기대주였다. 최근 한국 영화의 자신감을 반영하듯 역대 최대 제작비인 78억원(마케팅비 22억원 포함)을 투자했다. 감독.스태프.연기자 전원이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여섯달 남짓 추위, 더위와 싸워가며 이뤄낸 성과였다.

반면 관객은 담담했다. 지난달 7일 개봉 이후 지난 주말에 전국 2백만명을 턱걸이했다. 결코 작은 기록은 아니나 개봉 전후의 열기를 생각하면 초라한 편이다.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조민환 프로듀서는 "특별히 삭제한 부분은 없고 전체적으로 조금씩 줄였다"고 설명했다. 2시간 38분짜리와 2시간 8분짜리 중 구매자가 희망하는 버전을 팔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필름 마켓에서 '짧은 쪽'을 원한다면 다시 전면적인 보완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할리우드.홍콩과 차별화한 액션을 보여주고, 10여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고루 드러내려는 의도까진 좋았지만 결국 영화는 상처투성이가 됐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겠지만 꼭 그 지경까지 가야만 했을까. 처음 기획.촬영 단계 때부터 좀더 치밀하게 준비했으면 지금 같은 수모는 없었을 텐데….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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