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 정상회담이 남긴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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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어렵게 성사된 것치고는 별다른 진전 없이 양국간 감정의 골을 미봉하는 데 그쳤다.

고이즈미 총리는 과거사에 대해 진전된 입장 표명 없이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의 내용을 반복했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양국 학자간 연구과제로 넘겼다. 이것 역시 합의만 있었지 별 성과가 없었던 98년의 '양국 학자들의 역사 공동연구' 합의를 연상시킨다.

야스쿠니 신사와 별도의 추모시설을 만드는 문제는 이미 일본 내에서 논란을 벌이면서도 극우보수세력의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과제다.

교과서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재발방지 약속은 없었던 셈이다.

남쿠릴 열도의 한국 어선 꽁치 조업 문제는 논의할 과제라는 사실만 확인했다.특히 미국의 반테러전쟁 협조 요청을 업고 있는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하고 해명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성과라면 협의할 과제를 구체화했다는 정도다.역사인식 문제를 놓고 정상회담을 외면해온 한국 정부로서는 상당히 물러선 형국이다.

그럼에도 두 정상은 '새로운 출발'(고이즈미 총리)을 다짐했다.고이즈미 총리는 金대통령을 '파란 많은 소설같은 인생을 보낸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며 긴밀한 관계 유지를 기대했다.청와대 관계자는 "우리는 얻고자 했던 것을 충분히 얻었다"면서 "그동안 후퇴한 양국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평가했다.

정부 당국자는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우리 입장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논리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다.과연 일본으로부터 최소한의 성의있는 조치라도 받아냈는지 의문이다.조급한 관계복원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도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당장 "이런 정상회담을 왜 해야 했느냐"는 질문에 정부는 확실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김진국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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