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량의 월드워치] 부수적이지 않은 '부수적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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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공격을 개시한 지 한 주가 지났다. 크루즈 미사일.B-2 스텔스 폭격기 등 첨단무기를 동원해 맹렬한 공습을 계속한 결과 그렇지 않아도 빈약했던 탈레반의 공군력과 방공망은 완전 무력화한 상태다.

이와 함께 민간인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13일 미 해군기가 수도 카불 공항을 향해 발사한 스마트탄이 주거지역에 떨어져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한 예다. 탈레반 측은 이번 공습으로 이미 수백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미군이 움직이는 목표물에 '멍청이 폭탄'인 집속탄을 사용하기 시작함에 따라 민간인 피해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집속탄은 한 개의 폭탄 속에 약 1백50개 작은 폭탄들이 들어 있어 공중에서 폭발하면서 작은 폭탄으로 나뉘어 넓게 퍼진다.

폭발력은 강하지만 정확도는 낮다. 1998년 코소보에서 영국 공군이 사용한 5백31발 중 60%가 목표를 빗나갔다. 국제적십자사는 집속탄의 무차별성을 들어 오래 전부터 사용 금지를 호소해 왔다.

전쟁엔 민간인 희생자가 따른다. 군사용어로 이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부른다. 군사작전으로 인해 민간인이 보는 인적.물적 피해를 의미한다.

민간인 살상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완곡어법(婉曲語法)이다. 문제는 부수적 피해가 부수적 수준에 그치지 않는 데 있다.

첨단무기를 동원해 '외과수술'과 같은 정확한 공격을 가했다던 91년 걸프전에서도 다국적군 공습으로 희생된 이라크 민간인이 2만2천명에 달한다.

전쟁에서 민간인이 대량으로 희생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부터다.19세기까지만 해도 전쟁은 군인들만의 일이었다. 60만명이 사망한 미국 남북전쟁의 희생자는 대부분 군인들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민간인 살상이 전쟁의 주요 목표처럼 됐다. 제1차 세계대전의 군인 전사자는 8백30만명인 데 비해 민간인 사망자는 1천3백만명에 달했다.

5천5백만명이 사망한 제2차 세계대전에선 군인 사망자는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45년 2월 13~14일 독일 드레스덴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대공습으로 민간인이 최대 13만5천명 사망했고, 8월 6일과 9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민간인 20만명과 3만9천명이 각각 사망했다.

50~53년 한국전쟁에선 민간인 2백만명이 사망했으며, 65~75년 베트남전쟁은 전체 사망자 3백만명의 6할이 민간인이었다.

민간인 살상은 비단 무기에 의해서만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기아와 질병은 폭탄보다 무섭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선 7백50만명이 굶주리고 있다. 이중 1백50만명이 국경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간 난민 문제로 시달려온 이웃 나라들엔 대재앙이다. 며칠 전 미국은 3만7천5백명의 하루치 식량을 공중투하했다. 그중 상당수는 지뢰밭에 떨어졌다고 한다.'폭탄과 빵의 전쟁'은 환상일 뿐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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