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개혁 행동으로 보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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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법무부의 검찰 개혁방안이 발표됐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마련한 자구책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점 개선의 가닥을 잡은 정도일 뿐 개혁안이라고 내세우기에는 크게 미흡하다는 게 중론이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개혁하려는 의지보다 떠밀리듯 마지못해 급조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날 발표된 이용호 사건 검찰 감찰조사 결과나 김형윤 사건의 석연찮은 처리가 법무부나 검찰의 개혁의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마당에 어찌 검찰 개혁방안에 믿음이 가겠는가.

물론 평가할 만한 내용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검찰인사위원회의 활성화다. 지연.학연에 따른 불공정 인사가 검찰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엄정한 사건처리를 막은 핵심 요인이었다는 점에서 인사제도의 개선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또 특별수사검찰청을 신설해 권력형 비리나 정치적 의혹 수사를 전담케 하는 것도 검찰 중립성 확보를 위해 진일보한 방안이다. 검사의 항변권 신설도 상명하복.검사동일체 원칙 규정의 부작용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검찰총장.법무부장관의 구속승인제 폐지나 재정신청사건 대상 범위 확대 등도 바람직한 내용이다.

이는 모두 각계에서 이미 여러 차례 제시했던 의견들이다. 문제는 그동안 법무부나 검찰이 몰라서 못했던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실천 의지가 결여된 채 개선점만 늘어놓는 것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에 불과하다. 개혁 실천 의지가 있다면 최소한 제도개선이 필요없는 사건부터 당장 제대로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정원 현직 고위간부가 5천5백만원을 받은 혐의를 밝혀놓고도 수사를 미룬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돈을 직접 준 사람이 구체적 사실을 자백한 마당에 다른 참고인 조사 때문에 늦어졌다는 핑계를 대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당시 구속을 주장하는 주임검사의 교체까지 거론됐었다니 검찰 내부의 조직적인 축소.은폐 기도 움직임이 있었던 게 아닌가. 당시 수사 지휘선상에 있던 간부들이 사건처리 과정을 "기억이 안난다"는 식으로 발뺌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과 몇달 전 격론을 벌이며 처리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면 검찰 간부로서의 자격에 문제가 있다.

이처럼 의혹이 쌓여 있는데도 구속 며칠 만에 기소하며 "돈은 받았지만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마무리를 서두르면서 한쪽에서는 개혁을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검찰 개혁방안보다 왜곡된 사건의 진상 규명.문책이 선행돼야 한다. 사건만 엄정하게 처리된다면 개혁방안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부르짖는 개혁방안은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하다.

이러니 이용호 게이트 감찰 조사 결과의 미흡함을 감추기 위해 검찰 개혁안을 앞당겨 발표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개혁방안도 중요하지만 한번이라도 정치적 의혹을 남기지 않는 검찰 수사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국민 신뢰를 얻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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