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 따라잡기] '무조건 읽어라'식 지도 외면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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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나중에 은혜를 보답하려니 상대가 말한다.

"내게 되갚는 대신 다른 세 명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세요." 자,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는 금세 바람직하게 변화하지 않을까.

지난 월요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 가서 연구 결과를 1차 발표했다. 위원회가 의뢰한 이 연구의 제목은 바로 '청소년 독서지도 교수요목 연구 -『트레버』를 중심으로'.

미국 작가인 캐서린 하이디가 쓴 소설 『트레버』(뜨인돌 출판사)를 중학생들에게 읽힐 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집중적으로 모색해 본 시도다.

독서지도 교수요목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겠다.

그만큼 우리 나라에서는 개발도 활용도 활발하지 않았던 분야다. 쉽게 말해 독서지도 교수요목이란 특정 도서를 독서 지도할 때 꼭 가르쳐야 할 요소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여기에 지도 대상인 학생을 철저히 파악하고 효과적인 지도 방법들을 제시해야 한다.

『트레버』는 세상을 바람직하게 바꾸는 방법에 대해 작가의 상상력이 소박하면서도 진지하게 펼쳐진 작품. 어느날 사회 선생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실천하라'고 특별 과제를 내 준다. 12세 소년 트레버는 고민 끝에 마침내 글 첫머리와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손에 땀을 쥘 정도가 아닌데도 대다수의 중.고등학생들은 트레버의 좋은 세상 만들기에 차츰 빠져든다. 그리고 또래의 성공과 실패를 확인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람직한 가치관을 키우며 허구의 진실을 맛본다.

이 소설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와 트레버 재단 사이트(http://www.payitforwardfoundation.com)도 있어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와 같은 독서지도 교수요목은 비록 개발의 어려움은 크지만 개별 텍스트를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지도할 수 있다. 또한 그저 책을 읽으면 좋다는 식의 막연한 독서 지도 자세를 버리게 하며, 특히 독서지도 아이디어들을 아무 생각없이 마구 적용해 정작 책과 청소년 독자가 소외되고 마는 '참극'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독서지도 교수요목을 좀더 보완하면 그것은 단순히 『트레버』라는 한 권의 책을 중학생에게 구체적으로 읽히는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 다시 말해 많은 양서들과 청소년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려는 과정에서 양자의 특성과 관계를 심층적으로 모색할 것이며, 이들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독서 지도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한층 높아질 것이다.

더욱이 최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독서 진흥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어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이제 '청소년에게 무엇을 어떻게 읽힐까' 머리를 모아 즐겁게 고민할 때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트레버처럼!

허병두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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