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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대해부] 5. 좌담회…전문가 발언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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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강명헌 교수(사회)=공정위는 그동안 시장에 경쟁 기반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최근 경쟁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박길준 학장=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재벌 규제는 다소 무리한 점도 있었지만, 의미는 있었다. 독과점 규제 등 시장구조를 개선하는 측면은 과연 공정위가 성공했는지 의문스럽다.

▶김정호 부원장=공정위의 존재 이유는 경쟁촉진이다.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강자 기업과 약자 기업을 나누고, 약자 기업 편을 드는 것이 목표인 듯 보인다. 시장이 이 정도라도 경쟁적으로 된 것은 공정위가 잘 해서가 아니라 규제완화나 외국의 압력에 따른 시장개방 때문이었지 않은가. 비교광고를 막아온 것은 문제다. 담합을 막는 데는 공정위가 기여했다.

▶이동걸 연구위원=재벌규제는 논란이 있지만 성과가 있었다. 출자총액 규제가 풀린 1998년부터 2년 동안 28조2천억원의 출자가 늘었다. 적절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벌규제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졸속으로 재벌규제를 완화할 때가 아니다. 유휴설비율이 20%가 넘는데 출자총액을 푼다고 투자가 늘겠는가. 아직 재벌의 문제가 엄연한 현실이라면 정부 어딘가에선 재벌정책을 해야 하고, 그렇다면 공정위가 나설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김정호=재벌의 문제는 30대 그룹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기업은 조금만 몸집이 커져도 사업 다각화를 추구한다. 30대 그룹 지정 제도는 억울한 규제다. 자기 노력과 실력에 상관없이 남이 못되면 졸지에 30대 그룹에 포함되고 다른 그룹이 잘 하면 제외된다. 30대 그룹을 잘라서 규제할 게 아니라 30대 그룹이든 1백대 그룹이든 문제가 있으면 잘못된 행위를 규제하면 된다.

30대 그룹 지정은 '억울한 규제'

▶박길준=최근 출자총액 규제나 30대그룹 지정 제도를 바꾸자는 말이 나온 것은 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경기는 항상 변동하는 만큼 거기에 매달려 법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정위가 불신받는 것은 크게 두가지 실수 때문이다.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했다가 다시 부활했다. 신문고시도 없앴다가 다시 만드는 바람에 국민 불신이 더 커졌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랄까. 정확한 논리와 통계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규억 교수=재벌규제가 만들어졌던 80년대에 비해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재벌 규제는 원래 20개 그룹으로 할 생각이었지만, 호사가(好事家)들과 높은 사람들이 규제 대상은 많을수록 좋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논리적으론 아무 의미가 없다.

▶이동걸=재벌은 변하지 않았다. 98년 이후 이뤄진 출자 가운데 40%가 적자기업에 한 것이다. 합리적으로 출자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외환위기 이후 30대 재벌 중 16개가 줄줄이 무너졌다. 공적자금은 궁극적으로 2백조원 정도가 들어갈 것이다. 엄청난 국민 부담이 된다. 이를 방치한다면 정부의 배임(背任)이다.

▶김정호=재벌 문제는 금융의 문제다. 은행 돈을 빌려쓰고 도산했을 때 책임을 지지 않는 게 문제였다. 그러나 이는 은행의 민영화를 통해 풀 일이다. 은행이 손해가 된다면 재벌 계열사라고 함부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이규억=재벌 정책은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 부처가 함께 나서야 한다. 특히 금융이 잘 돌아가면 재벌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된다. 이 문제를 공정거래법에서만 다루기는 곤란하다. 이번 기회에 재벌 정책 전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회=공정위가 '기업검찰'이란 소리를 듣게 된 것도 재벌정책 수행 과정에서 기업 조사가 과도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재계의 불만도 크다.

***내부거래 부당성 소비자가 판단

▶이규억=부당내부거래 조사는 공정거래법 중 논리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어제까지 기업 안에 있던 사업부가 독립해서 자회사가 되면 똑같은 지원행위라도 부당내부거래가 된다. 분사(分社)를 안하면 괜찮고, 독립하면 부당내부거래가 되는 것은 문제 아닌가. 부당성은 소비자가 판단할 문제다.

내부적으로 지원해서 소비자가 좋으면 좋은 것이다. 부당내부거래로 다른 경쟁자가 손해본다고 하는데, 그래서 경쟁이 아닌 경쟁자를 보호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상속을 통한 부의 편법 세습은 당연히 규제해야 하지만 그것은 조세정의 차원에서 세법으로 다룰 문제다.

우리에겐 중소기업 관련법 등 형평성을 강조하는 다른 법령이 많다. 사회적 약자 보호는 그런 법령에 맡기고, 공정거래 정책은 효율성 위주로 운용해야 한다.

▶사회='경제검찰'로서 공정위가 갖는 조사권.심판권에는 문제가 없나. 최근 법원은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과징금 부과조항에 대해 위헌심판까지 제청했는데.

▶박길준=조사권은 불가피하지만, 계좌추적권은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 손해배상소송을 하고 싶어도 공정위의 심결 절차가 끝나지 않으면 제기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피해 구제에 가장 민감한 이는 피해자 자신인 만큼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김정호=공정거래위 심결에 대한 사후 평가를 해야 한다. 1,2년마다 공정위의 시정조치 이후 시장과 업계가 어떻게 영향을 받고 달라졌는지 평가해 보자.

▶사회=공정위는 최근 '정권의 하수인'이란 말까지 듣는가 하면, 신문고시.언론사 조사 등의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많았다. 공정위가 위상과 역할을 바로잡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규억=공정위 위원 9명 중 5명이 공무원이다. 민간위원 4명은 비상임이다. 민간 전문가들이 공정위원이 되면 현직을 버리고 상임으로 활동하는 일본과 차이가 있다. 위원들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를 기록으로 남겨 공개해야 한다. 대법원처럼 다수 의견.소수 의견을 내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다 공개되면 위원장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박길준=현재는 공정위에 독립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李교수의 제안은 좋은 방법이다.

▶이동걸=전적으로 동감한다. 부(部)나 처(處)가 아니라 위원회 조직으로 만든 취지를 살려야 한다.

▶사회=공정위가 거듭나기 위해선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공정거래법과 정책은 한번쯤 정리할 때가 됐다. 공정위는 순수하게 경쟁촉진 정책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컨센서스는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규억=법령을 너무 꼼꼼하게 만들다 보니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많다. 상호 연관성을 고려해 전반적으로 공정거래법과 정책을 다시 보아야 한다.

▶김정호=현재의 공정위는 산업계만 보고 있다. 교육.의료 등 정부가 경쟁을 막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정말 경쟁촉진을 목표로 삼는다면 시야를 넓혀 과연 누가, 어떤 제도가 경쟁을 막고 있는지 살피고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정리=이상렬.서경호 기자

<범례>

①공정거래 정책 20년 성과

②재벌 규제에 대한 평가

③경쟁촉진 이곳에 집중해야

④정책대안 제시

<범례>

①공정거래 정책 20년 성과

②재벌 규제에 대한 평가

③경쟁촉진 이곳에 집중해야

④정책대안 제시

①공정거래 정책 20년 성과

②재벌 규제에 대한 평가

③경쟁촉진 이곳에 집중해야

④정책대안 제시

*** 이규억 아주대 교수

①외형적으로 제도는 정착, 경쟁정책 비전이 없다

②재벌 규제는 필요하지만 공정거래법만으로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③정부 다른 부처의 경쟁 제한행위 막아야

④약자 보호는 공정거래법이 아니라 다른 법령을 활용해야, 위원회 소수의견 공개제 도입 필요

*** 박길준 연세대 법대 학장

①재벌 규제는 다소 무리한 측면 있었으나 불공정거래 시정엔 상당한 성과

②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출자총액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문제

③공기업의 반(反)경쟁행위 감시에 더 치중해야

④피해자도 검찰 고발 가능하다록 공정위 전속고발권 완화

*** 김정호 자유기업원 부원장

①공정위는 경쟁촉진에 별 기여 못했다. 오히려 외국의 시장압력이 경쟁을 촉진했다

②30대 그룹 지정제는 억울한 규제, 잘못된 행위가 있으면 그것만 규제하면 된다

③보건.의료 등 사각지대 많다

④공정위 심결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민관 합동으로 사후에 평가

*** 이동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①재벌 규제 어느 정도 성과 있었다

②재벌 규제완화가 곧 경쟁촉진은 아니다. 졸속 규제완화에 반대한다

③정부가 앞장서 경쟁을 저해하지 말아야

④30대 재벌 금융기관 보유주식의 의결권 제한 유지해야

*** 강명헌 단국대 교수(사회)

①개발연대의 유산인 정부 주도 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②시장 규율이 서면 재벌규제는 장기적으로 폐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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