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영웅을 보고 싶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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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①특별검사제 도입,검찰인사 및 예산 등을 다룰 검찰위원회 설치(1997년 대선 공약).

②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98년 4월 9일 법무부 업무보고).

③미국.일본에서는 어떠한 권력자라도 검찰 앞에서는 예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98년 4월 13일 전국 검사장 초청 오찬).

④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검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2000년 1월 18일 검찰 간부와의 청와대 오찬).

*** 권력의 전리품이 된 검찰

김대중(金大中)대통령께서 스스로 약속하고 지시했던 내용들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검찰의 부당한 수사와 사찰로 엄청난 핍박을 받았던 金대통령인 만큼 특별검사제 도입 공약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온 국민이 바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집권하는 순간 그 약속은 배반당했고 막강한 검찰은 권력의 전리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것이 대통령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온 국민이 같은 심정입니다. 저는 평소에 한강 상류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의정부지청장과 춘천지검장이 "내 임기 동안 한강물에 단 한방울의 오염원이라도 떨어뜨리는 사람은 최고의 법정형을 구형하겠다"고 선언한다면 한강이 하루아침에 훨씬 맑아지리라고 확신해 왔습니다. 말하자면 최고의 환경운동은 검찰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디 환경뿐이겠습니까.

검찰이 기업의 비리를 제대로 엄벌했다면 오늘날 우리 경제가 이렇게 정경유착.탈세만연.부실회계로 얼룩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검찰이 바로 섰다면 오늘 세계 42위의 부패지수,넘쳐나는 '리스트', 끝없이 양산되는 의혹과 비리, 허탈감과 좌절감에 휩싸인 국민의 모습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로 불리는 이 스캔들로 말미암아 검찰은 끝 모를 심연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몇년 전 어느 방송사에서 방영된 한 드라마가 사람들을 휘어잡았습니다. 그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는 아예 길거리가 텅 빌 정도였습니다. 바로 '모래시계'였습니다.박상원씨가 열연한 그 드라마의 주인공 검사는 국민의 영웅이 됐습니다.

어떤 압력도 물리치고 오직 진실만을 향해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그에게는 높은 지위도, 큰 부도 추풍낙엽이었습니다.현실에서는 없는 드라마 속의 영웅에 우리 국민은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앞에 존재하는 것은 그런 영웅은커녕 초라해진 검찰의 일그러진 모습뿐입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의 성찬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온전하고 상설적인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십시오. 검사동일체 원칙과 상명하복제, 검찰사무보고와 구속승인제도를 없애버리십시오. 일본처럼 일반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에서 불기소한 사건의 심사를 통해 재수사 요구가 가능하도록 해주십시오. 재정신청제도를 전 범죄로 확대하십시오. 검찰인사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인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들이 의결권한을 갖도록 해주십시오.

*** 검사 동일체 등 개혁해야

검찰총장을 지명하면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통해 인준하도록 하고 검찰총장은 임기 후에 장관이나 국회의원.안기부장 따위의 또 다른 권력에 연연하지 않도록 아예 그런 자리로 갈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우십시오. 청와대에는 현직 검사를 옷만 벗겨 갖다 놓음으로써 검찰과의 통로를 만드는 일을 중단하십시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데 늦음이란 있을 수 없지요. 이런 개혁방안은 오래 전부터 국민의 꿈이 되고 염원이 돼 있습니다. 양식있는 모든 법학자와 법률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해 온 것들입니다. 무엇을 망설일 것입니까. 이제 우리도 영웅을 보고 싶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도 아닌 숱한 검사들이 나라의 불의와 부패를 일망타진하는 꿈같은 일들을 보고 싶습니다.

朴元淳(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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