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이겠지만 세상은 늘 자신 안에 인간에 대한 풍자 혹은 징후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보여준다. 테러로 폭파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그렇고 최근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이모씨 사건이 그렇다. 이 풍자와 징후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대강 읽고 덮으려 들면 그 끝에는 대개 진짜 파멸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들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거리의 광고도 마찬가지다. 최근 거리의 광고들은 우리가 춤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 춤이 댄스 그룹의 잘 훈련된 춤이든, 무도장의 춤이든, 주식 시세와 아파트 가격의 등락에 맞춘 춤이든 여하튼 모두 다 춤을 추고 있다. 대개는 돈의 리듬에 맞춰 우르르 몰려 떼춤을 추고 다시 우르르 빠져나온다.
그 춤판에 끼지 못해 안달인 사람도 있고, 춤을 추다 쓰러진 사람도 있고, 다 춘 뒤에 넘어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과 말도 안되는 춤을 늙도록 추는 사람도 있다.
그 춤판은 거리에서도 벌어진다. 지하철 역사 같은 곳에 모여 열심히 연습하는 아마추어 댄스 그룹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화장품 가게.식당.빵집.슈퍼마켓 등 거의 모든 곳이 새로 개업을 하거나 행사를 할 때 춤을 동원한다. 이벤트 회사 소속임이 분명한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들이 가로 세로 뛰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전단을 나눠준다.
그 춤판과 젊은 여자들의 비음이 섞인 독특한 발음은 그 자체로 훌륭한 구경거리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그 뒤에서 춤을 추는 풍선인간이다.
풍선 인간? 이렇게 불러도 될까. 뭔가 다른 이름이 있겠지만 아직 텅빈 몸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그 놀라운 키네틱 조각의 이름을 모르므로 그냥 풍선인간으로 부르기로 하자.
풍선인간의 구조는 간단하다. 길다란 비닐 속을 기계로 불어 넣은 바람이 빠져나가면서 춤을 추게 만든다.
그 춤은 기계적인 것도 자연적인 것도 아니어서 바라볼수록 기묘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그 텅 빈 내부를 지나는 바람의 세기에 따라 꺾였다 다시 바로 서는 과정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물론 그것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보면 볼수록 그 춤이 우리의 삶에 대한 통렬하고 날카로운 풍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속이 텅 빈 채로 몸 속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에 따라 온몸을 꺾어 가며 춤을 추다가 모터가 멈추면 그대로 스르르 무너지는 풍선 인간. 즉 그 춤은 자신의 춤이 아니며 무엇인가에 의해 강제된 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맨 처음 그것을 만든 제작자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사다 광고에 쓰는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풍선인간은 세상이 사람들에게 보내는 풍자, 혹은 징후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