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벼 농민들 '긴 한숨'… 시중판매도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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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현종(57 ·전남 해남군 산이면 건촌리)씨는 밭 4천여평에 지하수로 벼 농사를 지어 왔으나 내년부터는 무엇을 심어야 할까 걱정하고 있다.

산도(山稻)라고도 하는 밭벼는 내년부터 정부가 수매를 받아주지 않는 데다 미질이 나빠 시중에 팔기도 어렵기 때문이다.콩 등 다른 것을 심자니 일손이 많이 들뿐 아니라 소득도 밭벼만 못하다.

최근 몇년 동안 급증해 온 밭벼 재배 농가들은 정부의 쌀 정책이 질 위주로 바뀌면서 작목 전환이 불가피해 고민에 빠졌다.

8일 농림부에 따르면 밭벼는 1995년 5백31㏊에 불과했던 재배면적이 이듬해부터 해마다 급증,올해의 경우 2만7천3백75㏊로 50배나 늘었다.

전체 벼 재배면적(1백8만3천㏊)의 2.5%에 이른다.특히 전남지역은 밭벼가 2만1천64㏊로,전체 벼 재배면적의 9.3%를 차지하고 있다.

최소한의 물만 대주며 재배하는 밭벼는 논벼보다 쌀이 차지지 않고,특히 밥이 식었을 때 푸석푸석해 맛이 없다.

이 밭벼 재배가 급증한 것은지하수를 개발해 물만 대주면 잘 자라고 기계화 영농이 가능해 다른 밭 농사처럼 품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밭 작물과 달리 시세가 안정적일 뿐 아니라 소득 또한 높아 재배 농가가 급증해 왔다.

그러나 정부가 밭벼에 대해 올해부터 수확한 그대로 사들이는 산물 벼 수매를 중단한 데 이어 내년부터는 일반 수매 대상에서도 제외하기로 했다.

농림부 식량정책과 이장의씨는 “밭벼는 논벼보다 밥맛이 크게 떨어지는 데다 악덕 상인들이 일반 쌀에 섞어 팔음으로써 쌀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요인도 돼 재배를 억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신 자급율이 24.5%에 그치는 콩을 심도록 적극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소득이 적게 나와 농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밭벼는 10a당 소득이 평균 47만7천원인데 비해 콩은 36만8천원에 지나지 않는다.

벼 재배면적 중 밭벼가 14%로 전국 최고인 해남군의 노성철 농사계장은 “밭벼는 미질이 나빠 수매를 안 하면 사실상 판로가 막힌다”며 “다른 밭 농사는 소득도 소득이지만 밭벼에 비해 일손이 많이 필요해 농민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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