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초고층 건물 기술·관리체계 확립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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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의 자존심이자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테러로 붕괴됐다.세계에서 넷째로 높은 1백10층짜리 건물이 사라진 것이다. 1993년의 폭탄테러도 견뎌냈던 건물이 어떻게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그 원인에 대해 일반인들은 아직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듯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高)건물인 말레이시아의 KLCC빌딩을 시공한 적이 있는 필자는 관련 자료와 피격 및 붕괴 당시의 자료화면 등을 토대로 전문가들과 붕괴 원인을 분석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번 테러는 항공기의 제원이나 비행술은 물론 건축공학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춘 자들에 의해 치밀히 계획됐다.

또 고도로 훈련된 테러범들에 의해 자행돼 건물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충돌로 인한 손상이라기보다는 화재였다.

세계무역센터는 건물 외곽에 기둥이 있고 중앙의 엘리베이트 홀 주변에 옹벽이 있는 구조다. 기둥과 옹벽을 철골보로 연결해 슬라브를 지지하고 횡력(橫力)에도 저항하는 형태다.

테러범들은 이런 구조적 특성을 파악하고 충돌 때 비행기가 횡경사를 유지토록 해 6~7개 층의 기둥에 동시 충격을 가했다.

미 대륙을 횡단하는 데 충분한 연료(9만1천ℓ)를 실은 비행기를 이용해 충돌 후의 화재까지 계산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 때문에 엄청난 양의 항공유로 인한 화재로 철골 구조체가 녹거나 강도가 급격히 저하돼 슬라브가 하중을 견디지 못해 내려앉았다.

이어 그 충격이 아래층으로 연쇄적으로 전달돼 건물 전체가 무너졌다. 두 건물이 충돌 직후 붕괴되지 않고 남측타워는 약 1시간, 북측타워는 1시간 40분 이상을 견뎌 많은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었던 점이 이를 증명한다.

즉 일반인의 생각과는 달리 세계무역센터는 붕괴 순간까지 의도된 기능을 훌륭히 발휘했던 것이다.

이번 참사로 사회 일각에선 고층건물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지만 세계적인 초고층화 추세는 계속될 것 같다. 초고층 건축물은 그 시대의 건축기술의 결정체이자 한 국가의 상징물로 인식된다. 국내에도 50~60층 이상의 주거용 건물이 지어지고 있고 1백층이 넘는 빌딩의 건설도 추진되고 있다.

1백층짜리 건물은 20층 건물을 5개 쌓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초고층 건물에서는 지진이나 외부 충격, 풍압 등에 대응하기 위한 구조 시스템에서부터 구조수축, 굴뚝현상(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바람이 부는 현상), 풍동현상(바람이 불 때 건물이 흔들리는 현상), 유지관리, 방재 및 피난에 이르기까지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핵심기술이나 초고층 건축물 관리체계를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산(産).학(學).연(硏)은 건축물의 계획.설계.시공.유지관리 등 단계별 필수 요소 기술을 벤치마킹하거나 개발해야 한다.

정부는 관련 법규나 제도 등을 통해 정책적으로 지원하고,재난관리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관련 업계의 인식전환도 중요하다.

이번에 입증됐듯이 철골구조는 내화성이나 내충격성 등이 철근 콘크리트구조보다 취약하다. 이번 기회에 '초고층 건물의 구조재는 철골'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구조 시스템을 사용하고 신구조재 및 구조방식의 개발에 나서야 한다.

건축물과 생명의 밀접함을 이번 사고를 통해 다시 실감했다. 국민과 건설업계, 정부가 심사숙고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김종훈 한국파슨스 (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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