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려라! 혼자 지내면 치매 확률 1.5배 높아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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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15면

인천시 부평구에 사는 직장인 문모(41)씨는 최근 기억력이 부쩍 나빠진 것을 느낀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거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어, 뭐더라? 그거, 음…” 하며 말문이 막히는 일이 종종 있다. 복사를 하러 갔다가 ‘내가 여기 왜 왔더라?’ 멈칫거린 적도 있다. 지난달에는 업무상 약속을 까맣게 잊어 곤란을 겪기도 했다. 문씨는 “원래 암기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갈수록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치매를 방지하는 세 가지 방법

40세 넘으면 뇌세포 10년에 5%씩 감소
몸이 늙듯 뇌도 늙는다. 뇌세포는 40세 이후부터 10년에 5%씩 약 50억 개가 줄어들며 노화의 과정을 밟는다. 하루에 사라지는 뇌세포가 평균 136만 개 정도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무언가를 외우거나 기억하고 떠올리는 능력이 떨어진다. 뇌세포는 다른 신체세포와 달리 재생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임신 6개월의 태아 때부터 매일 약 5000만~6000만 개의 뇌세포가 만들어지면서 급격히 성장해 태어날 때는 약 1000억 개를 갖게 된다. 이 숫자는 평생 더 늘어나지 않고 감소한다. 발달에 따라 부피와 무게가 늘어날 뿐이다.경희대 의대 동서신의학병원 신경과 이학영 교수는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화현상이지만, 일반적으론 사용하지 않아 필요 없는 뇌세포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로 인한 특별한 이상이나 자각 증상은 없다”고 말했다.

기억 되살리지 못하면 치매
언어구사력이나 기억력·계산능력·방향감각 등 전반적인 뇌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정도라면 치매를 의심할 수 있다. 성격과 감정에도 이상이 생겨 이전에는 사교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한다거나, 엄격했던 사람이 너그러워지는 등의 변화가 있다.치매의 원인은 다양하나 대표적인 것이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 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여러 원인에 의해 잘못 만들어진 단백질이 뇌세포를 손상시켜 치매가 나타난다. 뇌세포의 감소 속도가 매우 빨라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심장병·고지혈증·비만·흡연 등으로 혈관이 손상돼 치매에 이른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깜빡깜빡 잊는 것은 치매가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치매는 주변에서 귀띔을 해줘도 기억하지 못하나 건망증은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건망증은 스스로 기억력 감소를 인지하고 메모 등을 이용해 보완하려고 노력하며, 정상인에게도 흔히 나타난다.치매는 아니나 동일 연령대나 교육수준 정도에 비해 인지기능이 떨어져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다. 경도인지장애일 가능성이 있다. 이 교수는 “기억력만 떨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들 중 10~15%가 추후 알츠하이머병이 된다”면서 “증상이 그보다 더 가볍다면 주관기억장애로 분류한다”고 했다

떨어진 기억력, 되살릴 순 없나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는 어디일까. 우리가 새롭게 경험하거나 학습하는 내용은 일단 해마에 저장된다. 기억의 임시저장소다. 그 안에서 오래 기억해야 할 장기기억과 잊어버려도 되는 단기기억이 구분된다. 예컨대 오늘 자동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처럼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날아가고, 보다 중요한 장기기억은 뇌의 표면인 대뇌피질 곳곳으로 이동해 오래도록 저장된다.

정보가 저장됐다고 하더라도 필요할 때 생각이 나지 않으면 소용없다.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뇌신경세포 간 네트워크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김승민(대한신경과학회 부이사장) 교수는 “뇌의 신경세포는 축색돌기(긴 돌기)와 수상돌기(짧은 돌기)로 서로 연결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데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을 때마다 강화된다”며 “후각이나 시각·통각 등 자극이 강할수록, 예습과 복습으로 반복될수록 잘 기억된다”고 말했다.

2000년 런던대의 엘리노어 맥과이어 박사는 탁월한 운전 실력으로 복잡한 런던 시내를 가로지르는 16명의 택시 운전사와 일반인 50명을 대상으로 뇌 구조를 분석했다. 그 결과 택시 운전사가 일반인보다 해마가 크며, 이는 베테랑 운전사일수록 두드러졌다. 매일 길을 찾는 자극이 뇌를 변화시켰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서상원 교수는 “특정활동을 많이 하면 그와 관련된 뇌의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부피가 늘어난다”며 “뇌가 자극에 의해 변화하는 가소성(plasticity)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머리 세게 부딪히면 뇌세포 감소
죽어가는 뇌기능을 살려낼 방법은 없을까. 첫째는 일주일에 3회 이상 걷는 것. 아주대병원 예방의학과 이윤환 교수는 “일주일에 3회 이상 숨차고 땀나는 운동을 할 경우, 인지장애가 생길 확률이 42% 낮으며 알츠하이머 치매의 위험도 33%나 적다”고 했다. 체내 혈액순환이 좋아지면 뇌혈류의 흐름도 좋아져 몸의 기능과 뇌의 기능이 활발해진다.

둘째는 두뇌활동을 활발히 해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이 좋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은 특별한 사고 과정을 요하지 않아 뇌기능을 저하시킨다. 신문이나 잡지·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를 하는 활동이 좋다. 나이가 들었더라도 늘 새로운 장소·음식·사람에 흥미를 갖고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는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며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그만큼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고 단어를 선택하고 표정을 관리하면서 두뇌활동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다른 사람과 만나지 않고 혼자만 지내거나 친구나 친척 없이 지내는 경우, 치매에 걸릴 확률이 1.5배 높다”며 “친목단체 활동이나 여행 등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기억력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머리를 때리는 것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김승민 교수는 “뇌세포는 어느 정도 없어져도 여유가 있기 때문에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머리를 세게 부딪히면 뇌세포가 깨져 없어진다”고 말했다. 우울한 감정이나 스트레스, 과음, 수면제나 각성제도 기억력을 감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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