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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각색, 뒷심 부족한 음악,배우들만 고군분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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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04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Jekyll & Hyde)’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최신작 ‘몬테 크리스토(원제 Der Graf von Monte Christo)’가 얼마 전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그동안 네 작품, 즉 ‘남북전쟁(The Civil War)’ ‘지킬 앤 하이드’ ‘스칼렛 핌퍼널(The Scarlet Pimpernel)’ ‘드라큘라(Dracula)’ 등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린 중견 작곡가다. 평생 한 작품도 올리기 힘든 브로드웨이에서 이 정도면 꽤 선전한 셈이다. 그중 ‘남북전쟁’은 1999년 토니상 작곡·작사상 후보에까지 올랐는데, 이때 함께 작업한 잭 머피가 대본·작사가로 합류해 2008년 11월 뉴욕 워크숍을 거쳐 지난해 3월 14일 스위스 외곽 장크트갈렌시에서 독일어로 초연한 게 이 작품이다.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연 예정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먼저 공연된 것이다.

프랭크 와일드혼 최신작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이 작품은 19세기의 대표적인 프랑스 작가이자 '삼총사'로도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이 원작이다.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의 젊은 선원 에드몽 단테스가 그의 지위를 시기하고 약혼자를 짝사랑한 ‘친구들’의 흉계로 무려 14년이나 감옥에서 억울하게 수감됐다가 탈옥 후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작위를 사들인 뒤 특유의 사교술과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통렬하고도 속 시원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뮤지컬은 잘 알려진 고전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잭 머피가 각색한 이 뮤지컬의 플롯은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이 거부(巨富)가 돼 복수한다는 설정만 비슷할 뿐 이야기는 원작과 판이하다. 가령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그리스의 영주 알리 파샤의 딸 에데와 함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옛사랑이었던 중년의 메르세데스와 합친다. 원작에서는 배신자 페르낭이 자살하지만 여기서는 아들인 알베르가 귄총으로 사살한다.

또 에드몽 단테스에게 진정한 ‘용서와 자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인물인 메르세데스 역시 뮤지컬에서는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묘사됐지만 원래는 극 중 페르낭의 대사처럼 더 부자인 남자를 찾아 부나비처럼 옮겨 다니는 인물이다. 사실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은 제대로 각색된 연극이나 영화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방대한 작품이다. 이 뮤지컬은 원작을 압축하거나 어느 하나의 관계나 에피소드에 집중하기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이 각색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한밤중에 할아버지와 함께 썰매에 태워 경찰 추격전을 벌이게 했던 디즈니를 능가할 만큼 저열했다. 책 세 권이 넘도록 이어지는 복수극 장면이 단지 노래 한 곡으로 끝나는 데다 내용도 돈으로 유혹해 망하게 한다는 거여서 허망함을 떠나 코미디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다. 오죽하면 극 중 등장인물인 자코포가 ‘왜 당신을 아무도 몰라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까지 알아서 늘어놓을까.

음악은 귀에 익은 대중적 선율이 많지만 작곡가의 전작들에 비해 더 이상 발전하지도 않았고 장면 간에 변별력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 프로덕션은 뉴욕 워크숍 연출을 담당한 미국 연출가를 초빙해 왔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무리한 각색과 뒷심이 부족한 음악만으로는 아무리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왔다고 한들 어떤 색깔을 보여 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이 뮤지컬은 과도한 원작 훼손으로 말미암아 잡히지 않는 캐릭터 해석에 고군분투했을 주·조연배우들이 몸을 던져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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