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복권공화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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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 각 부처의 경쟁적인 복권 발행이 한국을 복권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 정부의 각 산하 기관들까지 앞다퉈 복권을 남발해 발행분의 3분의2가 폐기 처분되고 있다.

행정자치부 등이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8개 부처가 올 상반기에 모두 18종 13억8천여만장의 복권을 찍어 이 가운데 65%가 폐기처분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난 한해 15종에 17억여만장을 발행해 45%가 폐기된 것보다 늘어난 것이다.

특히 행자부 산하 기관에서 내놓은 추첨식 제주관광복권은 82.6%가 폐기됐고 문화관광부의 추첨식 월드컵복권도 폐기율이 75%에 달해 이러고도 왜 복권을 발행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반면에 순수익은 지난해의 경우 발행액의 12.6%인 1천8백13억원에 불과해 발행기관에 따라서는 기대한 복권수익은 차치하고 적자로,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복권 발행이 급증한 것은 1998년 복권 발행 권한이 총리실의 행정조정실에서 각 부처로 옮겨지면서 판매 여부를 깊이 따지지 않은 채 복권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98년 이후 지난 3년간 신규 발행된 복권만 해도 산림청의 녹색복권 등 모두 일곱개나 된다. 기금 마련을 위해 복권사업에 기대는 지자체들마저 늘어나고 마구잡이식 발행도 계속된다면 기금 조성은 더욱 어려워지고 정부가 나서서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비난도 면키 어렵다.

현재 국내 복권 발행은 민간업체의 인터넷복권까지 합치면 30종에 달하고 최고 당첨금도 40억원까지 올라갔다. 여기에 어제 발매된 축구복표 토토복권을 포함해 내년에도 복권 발행 계획이 줄지어 있다.

최근에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경마.경륜.카지노와 같은 사행산업은 이상(異常) 활황세까지 나타나고 있다.

복권 남발을 막으려면 발행기관 스스로 전시행정의 유혹을 털고 치밀한 사업성 검토에 나서야 한다. 인터넷복권은 중독성이 강해 청소년을 차단하는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복권 발행 승인권은 각 부처가 갖더라도 복권 남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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