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방문단 남측가족 18명 상봉기다리다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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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에 오실 아버님께 드린다고 손수 지으신 잠옷까지 준비해 두셨었는데 끝내 상봉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

지난 2월 3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측 후보에만 포함됐던 남편 송수식(80)씨를 기다리다 숨진 황윤도(79.대구시)씨의 아들 송정일씨는 "만날 기약이 없어지자 낙담하신채 지내다 4월 15일 '가슴이 아프다' 며 쓰러져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며 안타까워 했다.

지난 3월 15일 서신교환을 통해 받은 남편의 편지를 가슴에 소중히 품고 다녔지만, 반세기 넘도록 수절하며 기다린 남편을 끝내 만나지 못한 것.

黃할머니처럼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도 기다림에 지쳐 숨지는 실향민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6일부터 치러질 4차 이산가족 방문단의 북측 후보 2백명의 남측 가족 중 18명이 이미 숨진 것으로 6일 파악됐다.

실향민 등 이산가족들은 상봉단 탈락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인국(82)씨의 사연(본지 10월 6일자 27면)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3차 상봉 북측 후보인 동생 고유상(70)씨를 기다리다 3월 13일 숨진 형 우상(77)씨도 "동생이 자꾸 꿈에 보인다. 웃으며 집에 들어오더라" 며 기대에 부풀었지만, 본인이 상봉단에 포함이 안된 것을 안 직후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

아들 병설(50)씨는 "18세에 의용군에 입대해 숨진 줄 알았던 동생이 살아 돌아온다며 식사도 잘하셨었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한의 맏형 김광연(70)씨와의 상봉을 기다리던 3차 상봉 후보대상이던 시연(65)씨도 상봉을 못하게 되자 3월 뇌출혈로 숨졌다.

유족들은 "형님의 졸업장까지 챙겨두고 기다렸지만 탈락소식을 들은 직후에는 낙담해 술만 마시고 형 얘기만 하셨다" 고 말했다.

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김민하(66)수석부의장의 어머니 박명란(100)씨도 지난 3월 5일 북한의 아들 성하(74)씨의 편지를 받았지만 4월 28일 숨졌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0여년 전부터 한적에 이산상봉 신청을 한 실향민은 지난달 20일까지 모두 11만7천3백11명이지만 이미 1만3천여명이 사망했다.

특히 80세 이상 신청자 2만3천명 중 생존자는 1만6천명에 불과하다.

한 이산가족은 "당국이 탈락자에게 다음 상봉 일정만이라도 제시해주면 고령 이산가족들이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방북단 선발시 고령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 등이 있지만 1백명 규모의 상봉단으로 이산가족의 안타까움을 소화하기는 어려운 실정" 이라며 "상봉규모 확대와 면회소 개설에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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