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로비 입다문 이용호… 수사 제자리 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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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G&G그룹 회장 이용호(李容湖)씨가 검찰에 구속된 지 만 한달이 지났다.

李씨 구속 후 그가 1천억원에 가까운 규모의 횡령 및 주가 조작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정.관계 유력 인사들의 비호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과 함께 일부 유력한 연결 고리가 언론 보도와 정치권 폭로를 통해 드러났다.

그러나 李씨의 국정감사 증언에서 정치인에게 돈이 전달됐으며 로비 대상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뿐 소위 '이용호 게이트' 의 핵심인 정.관계 로비 부분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이용호 게이트' 수사는 곁가지만 흔들며 장기화하고, 결국 특검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로비 혐의에 입 다문 李씨=李씨 게이트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李씨가 입을 열거나 계좌추적을 통해 밝혀내야 하지만 그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고, 계좌추적은 더딘 상황이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李씨가 국정감사에 나와 떠든 뒤 정작 검찰에서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李씨가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만 돈을 준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보인다" 면서 "정작 자신의 뒤를 돌봐준 정치인들은 끝까지 밝히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 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李씨와 李씨에게서 로비 자금 명목 등으로 42억4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여운환(呂運桓)씨 등의 관련 계좌에 대해 자금추적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李씨가 대부분의 로비 자금을 현금으로 인출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검찰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검찰은 또 李씨에게 보물선 발굴 사업자를 소개한 것으로 드러난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없는 상황에서는 소환할 수 없다" 는 입장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12월 동방금고 이경자 부회장에게서 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윤 전 국가정보원 경제단장에 대해서도 李씨와의 연관성을 일부 파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 소환조차 안한 상태다.

이로 인해 검찰 일각에서는 "두 사람 모두 현 정부 권력층과 특수 신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는 관측을 하고 있다.

◇ 검찰 간부 사법처리 가능한가=지난해 5월 李씨를 긴급체포한 뒤 36시간 만에 풀어준 배경과 두달 뒤인 7월 말 불입건 결정을 내린 과정 등에 대해 수사가 집중되고 있다.

특별감찰본부는 그동안 임휘윤 부산고검장을 비롯, 임양운(林梁云)광주고검 차장.이덕선(李德善)군산지청장 등 핵심 관계자 세명에 대한 조사에서 사실관계를 상당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이들에 대해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감찰본부 관계자들의 고민이다.

여기에다 이들에 대한 계좌추적에서도 의심이 가는 돈의 흐름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 점도 수사가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전망=검찰 일각에서는 "김형윤 전 경제단장과 이형택 전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검찰 수사는 기대만 부풀린채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任고검장 등 검찰 간부들에 대해서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자체 징계 등의 처분을 통해 사건을 봉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검찰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특검제 실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정치적으로 예민한 부분을 비켜가며 일부 정.관계 인사들의 비리에 칼날을 겨눌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재현.장정훈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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