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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의 신중국 경제 대장정] 3. 중국판 뉴프런티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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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시대가 구호를 필요로 한다면 오늘의 중국이 만들어낸 구호는 단연 '서부대개발' 이다.

충칭(重慶)을 포함한 서부 내륙의 9개 성은 중국 면적의 56%와 인구의 23%를 차지하지만, 몇몇 도시를 제하면 주민 소득이 동부의 10%에도 못 미친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가지속 발전' 전망에 따르면 간쑤성은 2062년, 티베트(西藏)자치구는 2090년에나 현대화 목표를 이룬다. 60년 계획과 90년 발전 전략! 뻥은 심하지만 뭐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이들을 어서 양지로 끌어내려는 중국판 '햇볕정책' 이 서부대개발이다.

간쑤성 란저우(蘭州)는 그 노력의 '뉴 프런티어' 였다. 8월 22일 란저우에 내리자, 현지의 안내자는 바로 어제 준공한 이 신공항이 서부개발의 구체적 성과라고 자랑했다. 밤새워 불을 밝히고 길을 뚫는 공사장 소음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 우리의 개발 현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란저우는 흙의 도시였다.

푸석한 흙 냄새와 황무지 하늘에 걸린 조각달의 이국 정취는 마구 행인의 심사를 흔들었다. 불과 8백㎞ 밖에서 둔황(敦煌)이 우리를 유혹했지만, 덜미를 잡는 바쁜 일정 때문에 란저우 시내의 둔황 박물관 견학으로 욕심을 다스려야 했다.

연 간 4백㎜ 이하의 강우량이 땅과 사람을 지치게 했고, 그래서 인재와 기술과 투자가 계속 타지로 빠져나갔다. 정책의 오류도 있었다.

먼저 부자가 되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은 동부연안 지대의 발전을 집중적으로 겨냥했고, 그 결과 서부는 점차 발전의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서부대개발은 그 차별에 대한 동부의 보상일 터였다. 그러나 란저우 외사판공실의 한 관리는 선부론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동부에서 서부로의 관심 이동은 "자연적" 이란 대답으로 공산당의 정책을 옹호했다.

그러고는 78년 개혁개방 당시 3백20위안이던 주민의 소득이 지난해에는 1천4백28위안으로 올랐다는 통계수치를 내밀었다. 못살았어도 정책은 옳았다는 말씀인데, 모범 관리의 '모범 답변' 이었다.

거리의 현수막에서 옥상의 간판까지 도시는 온통 대개발 구호 일색이었다. 서부의 사나이 존 웨인과 게리 쿠퍼 대신 중국 지도부는 이번에도 鄧을 내세웠다. 굳이 연고를 찾는다면 삼선개발(三線開發)이 있다.

60년대 미국의 베트남 참전으로 중국은 안보 위험을 절감하고, 미국의 포탄이 날아들지 못할 서부 산악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공업시설을 이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몽골에 배치된 소련 미사일이 뒤통수를 겨누고 있었다.

안보 논리로도 경제의 효율로도 완전 실패였으나, 당시 이 '작전' 을 지휘한 사령관의 하나가 鄧이었다. 그 실패의 흔적을 보고 싶었지만 사전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방문 요청은 완곡히 거절당했다.

서쪽에서 날아오는 모래를 막지 않으면 흙의 도시는 미구에 사막으로 변할 판이었다. 사막의 침략을 저지하려는 흙의 노력은 가위 필사적이었다. 먼저 농사를 폐하고 대신 나무를 심는 퇴경환림(退耕還林)의 궁리였다.

경작지 1무(畝)를 놀리면 8년 동안 밀 2백근씩을 나눠주고, 거기 나무를 심으면 다시 50위안씩 보조금을 주는 '당근 정책' 이었다. 밥보다 급한 것이 땅을 지킬 나무이기 때문이다.

마침 후두둑 하고 빗방울 몇 개가 비치자 안내자는 "하늘에서 밀이 내린다(下雨好比下麥子)" 고 반가워했다. 그들에게 비는 곧 밀이었다.

그리고 인공 조림이 뒤따랐다. 황허가 중국의 어머니(黃河母親)라는 내용의 현판과 석조상은 황허 연변에 숱하단다. 그중에도 란저우의 황허는 그야말로 젖줄이었다. 깎아지른 절벽을 외길로 달리는 지프의 곡예에 우리는 그저 하느님께 안전을 빌었다.

2천5백m 고지에 황허 물을 끌어올려 분사기로 뿌리는 조림 현장의 대역사(大役事)는 일종의 '자학 행위' 였다. 스프링클러 반경의 풀과 나무는 그래도 더위와 건조를 이겨냈지만, 그 혜택조차 닿지 않는 땅은 벌건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현장 관리자는 '나무 한 그루 기르는 어려움이 아이 하나 기르는 어려움과 같다' 는 이 지방의 속담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나한테는 대머리를 1만명쯤 세워놓고 한올 한올 머리칼을 심는 느낌이었다. 물과 나무를 기다리는 간쑤성의 산이 어디 1만 개에 그치랴? "鄭위원, 내년 식목일에 칼럼 하나 쓰시죠. 이런 고생 좀 보고 가서 제발 산에서들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라는 장세정(張世政)형의 말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당장의 경제적 효과로만 따지면 조림은 비효율적 투자였다. 나무가 뿌리를 박고 스스로 자랄 물을 간수하려면 적어도 10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요즘 10년을 내다보고 산에다 돈 묻어둘 '한가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니까 조림은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돈을 심고 인내를 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흙과의 싸움이지만, 사실은 자연을 상대로 벌이는 인간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당신들이 성공해야 우리 나라에 황사가 줄어든다는 나의 말에, 란저우시 환경녹화공정지휘부의 장싱자오(張興照)지휘는 "정말 그렇다" 면서 파안대소했다.

개발의 망치 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점에서 서부는 우리 취재에서 가장 '생산적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서부대개발을 '정치적' 관점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댐과 도로와 발전소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SOC)건설 계획은 어마어마한데, 그 비용의 큰 몫을 외자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투자까지 하며 그 척박한 땅으로 들어갈 외자는 많지 않으리라는 것이 각지에서 만난 경제계 인사들의 평가였다.

정부 역시 그런 현실을 뻔히 보면서도 소문은 크게 낸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소문에는 세금이 없으니까. 한층 더 고약한 해석도 있었다. 어차피 민족별로 분리될 운명이라면 그 전에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이 상책인데, 서부대개발은 그 고갈 작전의 하나라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이었다.

동 서 격차로 인한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돈과 사람이 오가야 한다. 서부의 소수민족 출신을 동부로 나오게 하거나 동부의 한인이 서부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전자보다는 후자가 비용도 덜 들고 실속도 많다.

13억 인구의 92%를 점하는 한족(漢族)의 서부 이주를 위해서는 그만한 편의와 유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동부를 위한 서부개발이 되는 셈인가?

일례로 쓰촨성은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서부개발에 포함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거기마저 빼놓고는 누구한테 투자를 권할 염치가 없어서 억지로 - 정치적으로 -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황허는 상류로 갈수록 황토가 진하다. 강물이 거의 붉은 빛을 띠는 란저우 북쪽 하커우(河口)에 서기동수(西氣東輸)의 현장이 나온다. 칭하이(靑海)성 써베이(澁北)에서 장장 8백㎞를 달려온 직경 6백㎜의 천연가스(LNG)관은 여기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황허 도하에 다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청년돌격대' 기치를 내걸고 착공한 이 거대한 공중 배관공사는 올해 10월 1일 건국기념일을 맞아 완공할 예정이다.

이로써 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는 란저우 시민은 비용이 크게 줄고 환경이 한층 개선될 것이다. 란저우는 그래도 '서부의 동부' 였다.

회족(回族)임을 나타내는 하얀 터번의 노인에게 금색으로 빛나는 '서부대개발' 간판을 가리켰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시가 아니라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일 게다. 이렇게 '서부 내의 서부' 가 또 있었다.

농상인가라는 고장의 명주가 가리키듯 예전에 이 지방은 농으로 불렸다. 득롱망촉이랬으니, 다음 일정을 촉(蜀)으로 잡은 것은 정말 멋진 선택이었다.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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