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M&A 위협 기업들 떨고 있다] 上. <메인> 66% "방어대책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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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 등 적대적 M&A 위협 66% "방어대책 없다"
많은 대기업이 '외국자본에 경영권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외국인 주주 지분율이 50%를 넘는 기업이 잇따라 등장하는 가운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방어책을 수립하는 것도 현 상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상법 개정 등 특별 대책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중앙일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코스피(KOSPI) 200대 기업(증권거래소 상장기업 중 일정 요건에 따라 선정한 우량기업 200개사)을 설문조사한 결과 5개사 중 1개 기업꼴(19.1%)로 경영권이 불안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매출액 2조원 이상인 대기업들(31개사)은 세 곳당 한 곳꼴인 11사(35.3%)가 경영권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이 조사는 12~15일 했다.

이에 따르면 경영권 불안을 느끼는 기업 중 절반 이상(54.5%)이 외국인 지분 증가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실제로 SK㈜는 내년 초 주총을 앞두고 소버린 자산운용의 공격이 최근 본격화함에 따라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는 정부가 제출한 공정거래법대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한도가 15%로 낮아지면, 외국계 10대 투자자의 지분을 합친 것보다 지분이 적어져 적대적 M&A 위협에 노출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거래소 상장기업의 외국인 주주 평균 지분율은 2000년 30%에서 11월 16일 현재 43%로 높아졌으며, 이 중 시가총액 상위 20대 기업의 경우 절반을 넘는 11개사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외국인 주주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나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200대 기업의 65.6%가 "현 상황에선 대응책을 전혀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기업들은 적대적 M&A를 못 하도록 원천적으로 규제하거나(13.7%) 방어수단을 활성화해 달라(58.8%)고 정부에 요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규황 전무는 "외환위기 이후 공격은 수월하게 하면서 방어책은 거의 마련하지 않아 지금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면서 "지금이라도 정부는 서둘러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최근에야 비로소 문제점을 인식,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5일 "실효성 있는 경영권 방어장치를 검토 중이며, 연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금융연구소 이상묵 상무는 "미국과 유럽이 만들어 놓은 M&A방어책은 주로 정관 변경 사항"이라면서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도입해도 외국인 주주가 압도적인 주요 기업들은 정관 변경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국가적으로 중요한 업종의 기업에 대해선 외국인들이 경영권을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미국의 엑슨 플로리오법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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