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앙금 풀기 지식인 모임 출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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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과 일본이 서로 극단적 민족주의를 지양하자는 취지의 지식인 모임이 출범한다. '한 .일, 연대21'이 그것이다. 대표를 맡은 최원식(인하대.국문학.'창작과비평' 주간) 교수와 일본 측 좌장인 고모리 요이치(도쿄대.일본문학) 교수 등 양국 지식인 14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1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일, 새로운 미래 구상을 위하여-교과서 문제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첫 심포지엄을 열고 '한 .일, 연대21'의 발족을 공식 선언한다. 최 교수는 "한.일협정 40주년을 맞는 2005년을 '한.일 화해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고 밝혔다.

화해로 가는 길목의 걸림돌로는 역시 양국의 '감정적 민족주의'가 지목됐다. 모임 결성은 한국 측이 주도했다. 특히 한국 측 참가자들의 학문적 입장을 감안하면 이 모임이 민족주의와 탈(脫)민족주의 간 접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어 주목된다.

?'창비'와 '당비'의 만남=한국 측에선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계간지 '창작과비평'(이하 창비)과 탈민족주의를 줄기차게 전파해 온 계간지 '당대비평'(이하 당비)의 핵심 멤버들이 '한.일, 연대21'에 참여했다.

창비 계열은 최원식.백영서(연세대).한홍구(성공회대) 교수 등이고, 당비 계열은 김철(연세대).박유하(세종대).김은실(이화여대) 교수 등이다. 여기에 식민지 시대의 경제 성장을 인정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영훈(서울대) 교수도 가세했다.

창비와 당비의 만남, 그리고 최원식.김철.이영훈의 만남은 한국 사회 이념의 지형도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최 교수는 "한반도의 평화와 일본의 극우적 동향을 제어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일인데 탈민족주의자라고 해서 못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최 교수는 창비를 통해 1990년대 후반부터 '동아시아 연대'를 주창하며 '열린 민족주의'를 모색해 왔지만, 그 뿌리는 '식민지 수탈론'이란 전통적 민족주의에 가까웠다.

?일본.한국 교과서 비판 병행= '한.일, 연대21'이 결성된 직접적 계기는 일본의 극우 교과서(후소샤판 역사교과서)다. 2005년에 개정판을 내는 후소샤판이 '채택률 10%'를 목표로 대대적인 세불리기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일, 연대21'은 우선 '발등의 불'인 후소샤판의 확산 저지를 당면 목표로 내세웠다. 2001년 일본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한 후소샤판은 당시 한.일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쳐 채택률이 1%에 못미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일, 연대21'이 기존의 일본 비판과 달라진 것은 한국측의 '자기 반성'을 병행하는 점이다. 후쇼샤판 교과서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동시에 우리 역사교과서의 '자국 중심주의'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철 교수는 "비이성적 반일 감정만 앞세우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도 엄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상호 비판과 연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창비 멤버와 입장 차이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일 관계에서 우리 사회의 대응방식에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한.일, 연대21'에 참여한 일본 측의 다와라 요시후미('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사무국장).시마무라 데루(일본여자미술대 교수) 등은 2001년 당시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던 인사들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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