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여성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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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신(新)중국엔 대표적인 여성 두 명이 있다. 한 사람은 ‘신중국을 만든 여인’, 또 한 사람은 ‘신중국을 망친 여인’이다. 중화권 언론의 표현이다. 후자부터 보자.

1949년 10월 1일 오후 2시, 마오쩌둥(毛澤東), 주더(朱德), 류샤오치(劉少奇), 저우언라이(周恩來)를 태운 차가 차례로 천안문(天安門) 뒤 주차장에 들어선다. 쑹칭링(宋慶齡), 리지선(李濟深), 궈머뤄(郭沫若) 등을 태운 차가 뒤따랐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선포식이다. 무(無)검문 통과는 이들까지다. 나머지는 통행증을 제시한 뒤에야 성루에 오를 수 있었다.

이날 오후 3시 노동인민문화궁 입구. 성루로 통하는 문이다. 한 여인이 들어선다. 마오의 부인 장칭(江靑)이다. 통행증이 없다. 경비병이 제지했다. 장은 “내가 누구냐? 주석에게 가야 한다”고 호통친다. 경비는 뤄루이칭(羅瑞卿) 공안부장에게 보고했다. 뤄는 ‘규정처리’ 네 글자만 지시한다. 장은 끝내 성루에 오르지 못했다. “이런 여인 때문에 중국이 망가졌다”고 언론은 개탄한다. 오죽하면 공산당 공식 웹사이트가 이 사실을 전했을까.

또 한 여인이 있다. 1927년 3월, 공산당이 주도한 상하이(上海) 2차 봉기가 실패한 시기다. 쑨원(孫文)의 부인 쑹칭링은 “공산당을 믿는다”는 한마디 말로 입당을 신청한다. 당은 감격한다. 황망 중에 입당은 미뤄진다. 1957년, 건국 초의 혼란이 한창이다. 쑹은 류샤오치 부주석을 만나 “입당하고 싶다”고 말한다. 류는 흥분했다. 즉각 마오에게 보고한다. 저우 총리가 찾아왔다. “여사께서 당 밖에 머물면 혁명을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당은 판단했다. 우리는 당신이 이미 당원임을 믿는다”며 고개를 숙였다. 훗날 류샤오치는 “어려울 때마다 당 곁에 계셨던 분, 인민과 함께했던 분, 그의 공헌은 우리 당 어떤 동지보다 뛰어나다”며 쑹에게 경의를 표했다. 1981년 5월 29일, 쑹이 숨지자 당은 국장으로 예우한다. 100만 명이 창안제(長安街)에서 그와 이별했다.

이런 중국이지만 사실 우리가 한 수 위다. 빼어난 여성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박세리, 지현옥(한국 여성 첫 에베레스트 등정), 김연아, 이상화 등 줄줄이다. 우리가 어려울 때마다 힘을 줬던 이들이다. 이젠 오은선이다.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다. 천안함으로 가라앉은 우리 마음을 통쾌하게 건져올렸다. 위대한 우리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진세근 탐사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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